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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NPO지원센터 May 24. 2021

✍36화 ♥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

[건강] 돈보다는 생명, 환자들이 거리로 나오다




생명을 이윤과 동등한 기준으로 비교 평가하지 말아야




Q: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에 대해 알고 있나요? 

✍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은 누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을까.


*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의 시작: 2000년 골수이식 외에는 생명 연장 방법이 없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에게 치료제가 개발된다는 기적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어요. '기적의 신약' 글리벡에 대한 개발 소식을 접한 환자들은 치료제가 국내에 조속히 들어올 수 있도록 정부에 호소했고, 그 결과 미국,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로 국내에서 판매가 허용되었어요. 그러나 한 달에 최소 6알, 증상에 따라 최대 10알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에게 1알 당 25,005원으로 책정된 글리벡 약값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죠. 당시 4인 가족 최저생계비가 98만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 달에 최소 300만 원이 드는 약값을 환자가 부담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죠.


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우회와 만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와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이하 건약)는, 2001년 봄 '글리벡 약 값 인하와 의약품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글리벡 공대위)'를 결성했어요. 환자와 보건의료인, 시민단체로 구성된 글리벡 공대위의 첫 공동 행동은 강남에 자리한 노바티스 본사 앞 항의 시위였어요. 환자복을 입은 백혈병 환자들과 의료인들이 함께 "이윤보다는 생명이다. 글리벡 약 값을 인하하라"라는 한글과 영문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었고 이날 기자회견은 제약회사에 약 값 인하를 요구한 국내 최초의 시위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켰죠. 글리벡에 대한 접근권 운동은 의약품 특허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투쟁이 되었어요. 글리벡 공대위는 당시 '약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문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제기했어요.




Q: 그 뒤로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 모든 변화에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이들의 품이 있다.


* 본격적인 운동의 시작: 환자들과 시민단체의 약값 인하 요구가 거세어지자, 정부도 어쩔 수 없는 협상에 들어갔어요. 그러나 노바티스는 가격을 절대 깎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어요. 글리벡 공대위는 그 근거를 물었고, 1989년 복지부가 미국과의 양자협정에서 국내 약값을 선진 7개국의 평균가로 정한다는 기준에 합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죠.



* 생명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추진하다: 글리벡 공대위는 거의 매주 노바티스 앞에서 집회를 이어갔어요. 환자들의 시위는 노바티스와 정부를 모두 향해 있었고, 노바티스와 가격 결정 회의가 있는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회의장을 기습 점거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죠. 글리벡 공대위는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환자의 투쟁을 해외 활동가들에게 알리는 등 국제 연대를 호소하기 시작했어요. 2003년 브라질 '세계사회포럼' 현장에서는 거대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싸우고 있는 국내 환자들의 투쟁이 소개되기도 했어요. 



* 모두의 생명을 위해 의견을 관철하다: 글리벡 약값 인하와 노바티스의 도덕성 문제가 국제적으로 확산되자, 노바티스는 문제가 더 번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한국 구매물량의 10%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어요. 그러나 글리벡 공대위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환자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며 이 알량한 제안을 거절했죠. 


시민사회단체들은 글리벡을 계기로 드러난 국내 신약 약가 결정구조의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했어요. 공중보건에 중요한 의약품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강제실시권’ (특허를 가진 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허권에 대한 제약) 청구 소송을 진행했어요. 글리벡 공대위와 환자들의 투쟁으로 현재는 글리벡의 보험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무상공급 프로그램 등으로 환자들의 접근권이 개선되었지만, ‘전 세계 단일 약가’를 고수하는 노바티스의 탐욕은 꺾지 못했어요. 




Q: 그래서, 이 과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 이 운동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을까.


*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다!: 글리벡 공대위는 환자들과 함께 본질적으로 치료제에 대한 독점적 이윤을 보장하는 특허권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더욱 부각하고 특허권보다 생명이 우선인 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운동을 확장시켰어요. 또한 글리벡과 같은 '신약'의 경우, 선진 7개국(A7) 평균가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는 내부 계약 조건을 처음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죠.



* 대안을 만들다!: 글리벡 공대위 소속 활동가들은 인도의 제약회사들을 방문해, 글리벡과 동일한 성분으로 더 싼 복제약(제네릭)을 만들 제약사를 물색했어요. 이때의 인도 방문과 글리벡 복제약 생산 과정은 영국 BBC 다큐멘터리로도 소개되었고, 이후 인도 낫코사의 ‘비낫’이 저렴한 가격의 글리벡 제네릭으로 출시되었죠.




✋ 잠깐,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에 당신의 관심 한 줌이 필요해요.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 약을 사지 못해 죽어가는 환자들이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한 해 1,400만 명이 약을 먹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고 해요. 거대 제약회사의 권력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강화되고 있어요. 높은 약값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약이 있어도 돈이 없어 죽어갈 수밖에 없는' 수십만의 환자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죠. '이윤이냐, 생명이냐'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며, 의약품을 필수재이자 공공재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 끝은 또 다른 시작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어 낸 조너스 소크 박사는 '이 백신의 특허권자는 누구냐'는 질문에, '태양에도 특허를 낼 수 있냐'라고 답했다고 해요. 의약품과 의학의 발전은 인류가 함께 쌓아온 사회적 산물이며 누구 한 사람의 특허로 소유권을 정할 수 없다는 의미였죠. 소크 박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연구 결과에 대한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소아마비 환자는 백신 출시의 1% 이하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해요. 의약품의 공공적 생산과 유통 그리고 접근권 보장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죠. 이번 기회에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고 이 변화에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앞으로 우리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보아요!

그럼 다시 또 만나요! 안녕!




※ 위 내용은 서울시NPO지원센터 변화사례 아카이브 내용을 축약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해당 글 더 자세히 보러 가기)

※ 2017년부터 모아 온 변화사례 리스트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변화사례 아카이브)

※ 인스타그램에서도 더 다양한 변화사레 리스트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변화사례 아카이브 인스타그램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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