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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NPO지원센터 Jun 07. 2021

✍59화 ♥ "간첩조작 진실규명 운동"

[인권] 국가폭력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사람들의 진실을 규명해내야 합니다




진실은 인간 존엄성의 근본이다 



Q: 간첩조작 진실규명 운동에 대해 알고 있나요? 

✍ 간첩조작 진실규명 운동은 누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을까.


* 간첩조작 진실규명 운동의 시작: 피해자들은 1970년대~1980년대 어느 날 갑자기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끝에 간첩으로 몰렸어요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는 북에서 남파되어온 간첩이 아니라남한에서 살던 평범한 시민들이 이른바 고정간첩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일이 잦았어요언론은 수사기관이 불러주는 대로 기사를 받아쓰다시피 했고, ‘반공이 최우선시되던 시기에 간첩은 다른 모든 진실을 집어삼키는 낙인이었죠피해자들은 검찰과 법원의 외면 또는 적극적인 동조 아래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10년에서 20년 가까운 징역을 살았죠. 출소한 뒤로도 보안 관찰로 인한 경찰의 감시에 줄곧 시달렸어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소속 인권운동가들은 '고문을 당해 간첩으로 조작되었다'는 피해자들의 울부짖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전국 각지 교도소로 면회를 다녔어요. 가족들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고 공소장 판결문 등 사건의 기록을 분석해, 1989년 전국 교도소에 '간첩죄'로 수감되어 있는 100여 명을 수사기관의 불법적인 고문으로 인한 조작 사건의 피해자, 즉 '조작간첩'이라 정의했어요. 



Q: 그 뒤로 간첩조작 진실규명 운동 어떻게 되었을까요? 

✍ 모든 변화에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이들의 품이 있다.


* 본격적인 운동의 시작: 인권운동가들과 피해자 가족들은 민가협 내에 ‘장기수가족협의회’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운동을 시작했어요. 장기수가족협의회는 <간첩조작은 이제 그만>, <간첩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라는 이름의 간첩사건 조작 증언 자료집을 만들어 실태를 알리기 시작했어요. 1989년 전국 순회 간첩 조작 사례 발표회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고통을 직접 용기 내 말하기 시작한 최초의 시도였어요. 그 뒤로도 인권활동가들은 <나는 간첩이 아니다_조작간첩 사건 실태 보고서>, <조작간첩 가족들의 인권실태 보고서등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고통을 피해자들의 언어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사회에 알려나갔어요.


* 과거사 위원회의 설립과 역할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의문사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의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국회 앞 농성이 시작되었어요. 그 투쟁의 결과로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되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발생한 의문사 사건의 진상조사를 시작했죠. 2005년 노무현 정부 때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설립되어 과거에 벌어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 조사에 박차를 가했어요. 영원히 묻힐 것만 같았던 인권침해 사건들의 일단이 햇빛 아래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134건의 확정판결 사건에 대해서 ‘진실규명 결정’을, 그 가운데 73개 사건에 대해 재심을 권고했죠. 



*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기까지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사건은 공교롭게도 모두 안기부에서 고문 조작한 사건들이었어요. 고문수사관 이근안에 의한 대표적 조작간첩 사건이었던 함주명 사건을 시작으로 조용환 변호사는 재심의 법률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갔어요. 재심 준비 및 재판 진행과정 동안 시민들이 ‘조작간첩’ 피해자들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결국 공식적으로 무죄판결이 났어요. 판결문에는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어요. 진실규명을 통해 피해자들이 법적 권리를 회복하고, 일상에서 반복되어온 고문 후유증과 두려움, 공동체로부터의 차별과 소외를 부족하게나마 치유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어요. 




Q: 그래서, 이 과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 이 운동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을까.


* 피해자의 내상을 들여다보는 관점의 전환재심을 위해서는 고문과 조작이라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증언해야 하는데, 피해자에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고통이었어요. 불법감금과 고문이 이뤄졌던 지하 고문실의 기억은 너무나 생생했고 그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피해자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주변화 시키면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정의는 없어요. 2005년 9월 국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청문회에서 고문조작 사건이 생존자의 삶에 미친 정신적 내상을 드러내고 해결을 촉구하는 자리를 가지게 됐어요. 정신과 전문의가 함께 “고문 피해자가 겪고 있는 현재적 고통”을 드러내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는 ‘고문치유모임’의 기본 동력이 되어 재단법인 진실의 힘 설립으로 이어졌어요.




✋ 잠깐, '간첩조작 진실규명 운동'에 당신의 관심 한 줌이 필요해요.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 간첩조작 진실규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과거청산은 미완성이고 여전히 그 길 위에 서있다고 볼 수 있어요수많은 사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선고받았고수사기관의 고의적 조직적인 조작이 있었다고 밝혀지기도 했지만가해자들은 한 사람도 처벌되지 않았죠고문조작을 대가로 그들이 받은 훈·포장도 그대로예요과거 인권침해를 발생시킨 법과 제도기구를 손보고 시정하려는 노력도 이어지지 않았어요이들을 간첩으로 옭아맨 국가보안법은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은 채 여전하며 국정원기무사경찰 대공분실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또 다른 형태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국가의 기본을 흔들고 있죠.




⌛ 끝은 또 다른 시작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국가 폭력 사건들은 우리가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직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거울이에요. 이번 기회에 '간첩조작 진실규명 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고 이 변화에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앞으로 우리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보아요!

그럼 다시 또 만나요! 안녕!



※ 위 내용은 서울시NPO지원센터 변화사례 아카이브 내용을 축약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해당 글 더 자세히 보러 가기)

※ 2017년부터 모아 온 변화사례 리스트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변화사례 아카이브 보러가기)

※ 인스타그램에서도 더 다양한 변화사레 리스트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변화사례 아카이브 인스타그램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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