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 별

질문 위에 서는 별

by 오필

세바스티안, 라온델, 카일리스가 처음으로 함께 대화를 나눈 그날밤의 감각은 오래도록 연결되었다.

그날 이후로 카일리스는 일부러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정리되기 전의 상태가, 그 과정을 충분히 느낄 필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레이먼의 행색을 유지한 채 정해진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돌다 돌아온 자신이 포르투나 엘렉티오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느끼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향유하듯 걷기 시작했다.


처음 발길이 닿은 곳은 마을 중심의 대장간 거리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불의 냄새가 완전히 가시기 직전의 경계, 아르도라의 외곽이었다. 카일리스는 이곳을 황궁에 있던 시절, 정식 외출이 허락되지 않던 때에도 몇 번이나 회색 망토를 둘러쓰고 이 언덕까지 올라온 적이 있었다. 아르도라를 내려다볼 수 있으면서도, 불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아도 되는 자리, 언덕 아래로는 대장간의 굴뚝들이 줄지어 있었다. 낮은 굴뚝에서는 아직 불이 살아 있었고, 높은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만이 느리게 흘러나왔다. 외곽을 따라 걸을수록 쇠를 두드리는 소리는 멀어졌지만, 땅속 어딘가의 진동처럼 다가와 느껴졌다. 그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발밑의 흙은 단단했고, 곳곳에 금속 부스러기가 섞여 있었다. 아르도라의 흙은 언제나 불이 지나간 흔적을 숨기지 않는 땅이었다. 카일리스가 황궁에 있을 때는 이 마을을 늘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생각했다. 멈추지 않는 열기, 식지 않는 의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때의 그는 불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자신은 멈춰 있어야 했고, 질문조차 자유롭게 허락되지 않는 자리에서 불은 언제나 제 마음대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에 위로또한 받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자리에 서서 바라본 아르도라에서는 다른 부분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모든 불이 타오르고 있지 않았으며 식은 화덕, 망치가 내려 놓인 채 하루를 넘긴 듯한 작업대도 보였다. 이곳저곳의 불은 꺼졌다가 다시 피워졌고, 결과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카일리스는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꿈틀대던 열정이 요동친다.

꿈틀댐이 머무르는 저곳은

열정의 상징인 것인지, 진행 중인 것인지

뿌연 바람이 되어 아름답게 흩날려간다.


누군가 열정을 가늠한다면

보이는 것에 집중을 할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할 것인지

빠른 것에 집중을 할 것인지

지속됨에 집중할 것인지


오늘과 내일의 열정의 기준이 다르다면

열정은 무엇으로 가늠할 것인가.


나의 열정에 아름다움은 현재

어디에도 자리 잡고 있지 않는다.


불이 타올라 바람이 되어 흩어질 수도

불이 되어 그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다.


언제나 시작될 수 있음을 간직한 채

그저 무엇이 필요한지 가늠해 본다.'


아르도라를 떠나 마로바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공기의 결이 먼저 바뀐다. 불의 냄새가 빠지고, 소금기와 젖은 천의 냄새가 다가온다. 저 멀리 보이는 개방되어 있는 항구로 배가 들어오고 나간다. 배가 닿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진다. 파도가 흐르듯 움직이는 사람 사이에 누가 머물렀는지 중요하지 않는 듯한 얼굴도 있다. 이곳에서는 숨김의 연속을 가진 사람과 항해를 함께하면 탈이 날지도 모르기에 감정을 숨기기보다, 감각을 숨기기보다 들어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불문율처럼 상처나 아픔을 숨기기보다 들어낸 후 감싸는 게 익숙하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발밑 파도의 결은 쉼 없이 움직이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밀려왔다 물러가며 그저 있어야 할 자리에서 같은 선을 다시 넘지는 않는다. 판단하기 전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어떻게 보낼지, 자연스럽게 물이 되어 흘러갈 뿐이다.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젖은 밧줄과 소금기 밴 나무 냄새, 오래 씻기지 않은 천의 축축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항구 쪽에선 낮은 소리가 이어진다. 부딪힘도, 외침도 아닌 짐이 끌리는 소리, 나무가 서로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나무와 파도가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무언가가 계속 오가지만 시작과 끝은 잘리지 않은 채 이어진다. 사람의 소리가 들어와도, 들어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방파제 아래 쌓인 부서진 배의 나뭇조각은 오래전부터 그곳에 머물렀던 것처럼 쌓여 있다.

카일리스는 멈춘 듯, 멈추지 않은 듯 마치 파도처럼 멈춘 듯, 멈추지 않은 듯 항구를 지나간다. 쉼 없이 움직이는 항구의 감각, 그 유동적인 움직임에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금세 다른 발자국으로 덮인다. 여기서는 남겨진 것이 지나간 것을 붙잡지 않고, 지나간 것이 남겨진 자리를 없애버리듯이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치유는 낫는 속도가 아니라 견딜 수 있는 리듬에 가깝다. 머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섞여 있는 풍경 속에서 어느 쪽도 더 옳아 보이지 않는다. 사라짐이 잘못은 아니라는 듯이 파도는 붙잡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다. 젖은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이 곧 사라질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걷는다.


'발에 닿아 찰방거리는 물,

발목에 닿아 찰랑거리는 물,

무릎, 골반, 배, 가슴, 계속 올라오는 물,

나를 감싸오는 물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목을 넘어, 입을 넘어, 코를 넘어 머리까지 잠긴다.

물속에 잠긴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니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나의 몫이다.


답답함을 느낄 것인지, 자유를 느낄 것인지

선택이 중요한 것인지, 선택 이후가 중요한 것인지

물속인 줄 알았으나 공기를 들이켜니 숨이 들어온다.'


멈춘 듯, 멈추지 않은 듯 항구의 습기를 뒤로한 채 테라노바에 가까워질수록 땅의 감각이 말을 건넨다. 신을 신고 있어도 발에 닿는 듯 감촉이 선명하다. 흐트러지지 않은 드넓은 들판, 베인 줄기의 방향과 묶인 단의 간격, 남겨진 자루와 비어있는 공간은 보는 하여금 풍요로운 안정감을 자아낸다.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느끼는 시간보다 처리하는 순서가 앞서며 말보다 익숙한 손이 먼저 움직인다. 흙길에 눌린 발자국은 그대로 자국을 남긴다. 밟힌 자리에는 무게가 남고, 그 위로 다시 발자국이 이어진다. 자국들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비가 지나가면 눌린 자국의 형태는 사라지지만 세월의 무게는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흘려보내는 대신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남겨둔 공간조차도 계산에 포함된 여백처럼 보인다.

카일리스가 잠시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무게를 느낀다. 이곳에서는 지나간다는 말이 가볍지 않다. 그냥 지나간 자리, 지나간 걸음이라도 한 번 밟은 자리는 다음 걸음의 기준이 된다. 사람들의 손은 바쁘지만 급하지 않다. 정해진 순서를 건너뛰지 않고, 옮길 것은 옮기고 남길 것은 남긴다. 자루 옆에는 작은 표식들이 놓여 있다. 글자는 선과 점이 되어 누가 가져가야 하는지 보다 언제 옮겨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표시처럼 보인다.

쌓인 풍요만큼이나 비워둔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자리. 그러나 비어 있다는 이유로 가볍게 취급되지는 않는다. 다음 풍요를 위해 남겨진 몫처럼 조심스럽게 비켜 두었다는 인상이 남는다. 풍요는 넘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정리된 상태, 유지됨으로 생겨난다.


'풍요로움은 행복인가

풍요롭다고 행복한가


쌓여감에 행복한 이 있듯이

쌓여가지 않음에도 행복한 이가 있다.

쌓여감에도 행복하지 않은 이 있듯이

쌓여가지 않음에 행복하지 않은 이가 있다.


행복, 즐거움은 풍요와 같은 듯 다르다.

같은 것을 보고도 행복하냐, 아니냐가 다르다.


배부름에도 욕망에 의해 먹을 수 있고

배고픔에도 욕구가 없어 먹지 않을 수 있다.

같은 걸음을 걸어도 욕망, 욕구로 그르칠 수 있다.


길을 걷기 시작할 때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의 무게를 잊는다면

같은 길은 걸어 나아가더라도

어느덧 다른 곳을 향하게 된다.'


테라노바의 들판이 끝나는 지점을 넘어, 언덕길을 넘어가다 보면 눈에 띄게 가지런한 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가면 곳곳에 다양한 선들이 아름답게 놓여있다. 벤토라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다양한 점, 선, 표식들은 늘어난다. 돌바닥 위에 새겨진 선, 기둥에 남겨진 문장, 사람의 발보다 먼저 놓인 기준들은 강압적이기보다 놀이와 유사하다. 이곳에서는 무언가 옮기기 전에 자리가 정해져 있다. 서야 할 선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미리 그어져 있다.

곳곳에 치솟아 있는 건물들의 외벽은 구조에 따라 그늘이 길게 늘어진다. 빛은 차단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걸러져 밝히기보다 정렬하기 위한 빛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불필요한 소리를 남기지 않기 위해 정갈한 숨으로 움직인다. 정해진 기준만큼이나 사고가 자유로움, 다양성이 인정되지만 선택만큼은 자유롭지 않다. 행동하지 않아도, 마음에 담지 않아도, 실리를 챙기지 않아도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만큼 선택의 결과가 명확하다. 여기서는 한 줄을 넘으면 다른 문장이 시작되고, 한 항을 어기면 다른 해석이 따라온다. 선택이 결정되기 전까지의 사유가 오래 걸릴지언정 결정이 된 순간에는 모호함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먼저 적힌 문장이 뒤의 문장을 지우지 않는 대신 설 수 있는 위치를 제한한다. 모든 문장은 자기 자리를 갖고서 정렬된다. 여기서는 말보다 기록이 오래 남아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누군가는 같은 선을 가볍게 넘고, 누군가는 오래 서서 계산한다.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과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선택의 이유보다 선택 이후가 중요하며 물음을 남기기보다는 선택이 만들어낸 구조를 남긴다.

카일리스가 정해진 규칙처럼 불어오는 바람을 향유한다. 이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질문의 길이 아닌, 질문 위에 서는 방식을 알려준다. 이미 있는 길, 점 위에 서면 보이는 문장이 달라지고, 선을 따라 반 발만 옆으로 옮겨도 해석의 각도가 바뀐다.


'길의 끝에서 문 하나가 열렸다.

언제부터 열려 있었는지 모를 문이다.

이 문을 넘기 위해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무를 수 없는 선택은 과정이 되고

과정이 쌓이면 결과를 만들어낸다.

정해진 결과와 정해지지 않은 결과 속에

시작을 알리는 선택의 무게는

무엇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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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키워드 - 희망, 믿음, 방향성

카일리스, 라온델, 세바스티안 세 명이 처음으로 교류 한 날

카일리스는 자신이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 온 그와 달리 라온델, 세바스티안은

이미 이곳에서 과거와 다른 자신들의 길을 올곧게 걷고 있었다.

대륙의 존폐를 결정지을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상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꾸릴 이유도, 행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고 있었다. 카일리스가 보았다면

그것은 틀리지 않았을 것일 거라는 것을 말이다.


희망만 가지고는 완벽한 결과를 낼 수 없다.

방향성이 명확해도 과정이 쌓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선택하기에 앞서 불가능성을 염두해 두기에

방향성이 맞는지는 결과를 봐야만 알 수 있기에

카일리스는 결정을 쉽사리 내리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고민의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이 짧든, 길어지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믿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카일리스가 지금 믿는 것은 자신이 아닌 그들의 견고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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