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없는 섹스가 있고 섹스 없는 사랑도 있다. 둘 중 하나의 정답을 정할 수는 없으나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랑과 섹스가 하나라고 여길수가 있을까? 그것은 마음속에서 섹스와 사랑을 동일시, 하나로 만들어서 그렇다. 마음을 통해 사랑과 섹스를 하나의 영역으로 만들어 융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로 융합된 사랑과 섹스는 사랑이 포함된 섹스와 포함되지 않은 섹스로 나눠진다. 이는 사랑하는 사이여도 사랑 없이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하며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항상 사랑과 섹스가 함께 아우러진 섹스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아마도 우리는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윤리적인 압박감이나 개인의 사명감에 의해 사랑과 섹스를 하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쳐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랑을 모르기에 이러한 상황에 쳐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섹스를 하나로 둘 수도 있고 나눌 수도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만약 사랑과 섹스가 하나라면 사랑하는 가족인 부모, 자녀, 형제자매와 섹스를 해야 하고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 섹스를 해야 하고 종교가 있다면 함께 종교사랑을 논하는 종교인들과 섹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을 억지라고 느낄 수가 있다. 가족이나 친구, 소속된 단체등에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특정 이성을 사랑하는 것이 다른데 합쳤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면 사랑이지 왜 섹스가 포함 됐을 때와 아닐 때의 사랑이 분리되었으며, 왜 사랑과 섹스를 이야기할 때는 섹스를 할 수 있는 관계와 대상이 일반화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랑이 애초에 그렇게 분리가 되어 정의를 내려야 할 사랑이라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나눠져 있었을 것인데 그 방안으로 섹스를 할 수 있는 연인 간의 사랑임에도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으로 분류가 된다. 그리나 사랑 없는 섹스와 섹스 없는 사랑은 연인이 아니어도 되기에 이 방안은 윤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모순이다. 그래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가타부타 다양한 종류의 사랑의 정의를 생각할 수 있으나 모든 사랑의 정의는 사랑에서 파생된 것일 뿐 공통된 사랑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사랑을 알지는 못한 채 현재 나온 이론에 한해서 함구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함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에는 가족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등으로 사랑을 정의 내릴 수 있고 사랑의 정의가 이렇게 내려져 있기에 마음으로 동일시된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사랑과 섹스가 하나라는 주장을 피해 갈 수가 없다.
사랑과 섹스를 분리하기 위해서 애매한 것은 결국 섹스라는 단어보다 사랑이라는 단어다. 사랑을 종류별로 나눠서 아무리 정리해 봐도 윤리적인 당위성을 토대로 사랑의 종류가 나눠졌을 뿐이지 사랑자체의 본질을 말해주지 않는다. 반면에 섹스는 단어 안에 뜻이 나눠지는 것일 뿐 나눠진 뜻은 명확히 구분이 가능하다.
애매한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섹스를 확실히 분리하려면 가타부타 나눠진 사랑의 정의가 아닌 사랑과 섹스를 윤리적으로 할 수 있는 연인 간의 사랑을 관점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인이 되었는데 속궁합이 맞지 않아 헤어지고자 한다면 육체적 사랑, 정신적 사랑에 대한 개인차가 있음에도 사회의 의미부여가 속궁합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육체적 사랑을 원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헤어지는 것을 납득할 수 있다. 그만큼 속궁합은 연인 간의 사랑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속궁합이 맞지 않는 상황은 성적취향은 고사하고 횟수, 빈도수, 성기능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과 섹스가 하나라고 전제가 되어있기에 연인, 부부사이에서 섹스의 빈도수가 줄어들면 사랑이 줄었다, 식었다로 표현되고 섹스를 사랑과 연관 지어서 말한다.
사랑이 줄었고 식은 것을 속궁합이라고 본다면 사실혼이 아닌 연애중일 때는 속궁합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법적 절차 없이 헤어질 수 있으나 결혼 이후에는 속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 이유가 되면 법적절차를 거쳐서 이혼을 해야 한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다른 건 다 너무나 잘 맞는데도 속궁합이 맞지 않아 이혼을 하게 된다면 그 부부는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속궁합이 맞지 않아서 이혼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과 섹스가 하나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종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으나 연인, 부부간의 사랑에는 대부분 섹스가 포함되며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속궁합이 맞지 않아서 헤어져야 하는 사람에게는 섹스 없는 사랑만으로는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다. 속궁합이 안 맞는다면 사회에서 말하는 섹스에 대한 윤리적인 부분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윤리적으로 보면 사랑과 섹스는 하나가 되는데 속궁합의 빈도수가 맞지 않아 이혼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강제로 하면 성폭행이 되고 그렇다고 이해한답시고 다른 사람이랑 하게 둘 수도 없다. 첫 번째 전제가 잘못되었기에 그 이후 일어나는 일들이 윤리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윤리적으로는 접근하면 식습관이 안 맞으면 따로 먹어서 해결할 수 있고 청소습관이 안 맞으면 하고자 하는 쪽에서 더 많이 해서 맞출 수가 있는데 속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랑 하라고 하지 못한다. 만약 섹스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섹스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는 원하지 않으니 내가 원할 때까지 윤리적으로 참으라고 한다면 섹스를 원하는 사람은 잠이 부족한 사람에게 자지 말라고 하는 것, 굶주린 사람에게 먹지 말라고 하는 것, 배변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큼 섹스를 불가항력으로 여길수가 있다. 그나마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욕구적으로 봤을 때 그만큼이라는 것이지 실제로는 섹스를 원하고 있을 때 하지 않는다고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러니 참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욕구적으로 그만큼 힘들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사랑과 섹스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 해결될 일들이 윤리적으로 보면 반론이 생겨서 해결이 되지 않고 비윤리적으로 볼 수도 없기에 이리보고 저리 봐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윤리적인 측면으로 접근해 보면 서로가 사랑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을 때 사랑과 섹스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바람과 외도문제에서 걱정할 것이 없다. 반면 사랑과 섹스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만나면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바람과 외도문제에서 걱정할 것이 생긴다. 그리고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서로가 섹스를 따로 여기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바람과 외도문제에서 걱정할 것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랑과 섹스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끼리 만나고 사랑과 섹스가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끼리 만나면 해결될 일이나 그렇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사랑과 섹스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섹스로 인해서 더 많은 상처를 받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주장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 모두가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성욕은 무조건적으로 절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속궁합을 먼저 맞추고 사랑할 것을 강요하게 된다. 정신적 사랑 위에 육체적 사랑이 기반되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 사랑과 섹스를 윤리적으로 할 수 있는 연인 간의 사랑의 관점을 제거해 보면 사랑하는 사이는 육체적 사랑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가로 봤을 때는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다시 종류를 구분지어서 연인 간의 사랑에서는 육체적 사랑이 기반되어야 하는가로 봤을 때도 그렇지가 않다. 윤리적으로 봤을 때와 보지 않았을 때 중에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가 불분명하고 이 불분명할 것을 윤리로 묶으면 논점은 흐려지고 사랑이 뭔지 알 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윤리적 사랑은 윤리적 사랑으로 두고 고정관념을 벗어나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이는 윤리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연인, 부부관계에서는 사랑만 추구하고 섹스만 하는 관계를 따로 분리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연인 간의 사랑에서는 사랑과 섹스는 밀접하고 중요하다는 것이고 밀접한 것이지 하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의 종류와 유형을 나누고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른 것까지 정리가 많이 되었다 해도 구분된 사랑이 아닌 사랑자체가 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게 된다. 현시점의 사랑자체는 아무리 많이 정리해 놓아도 '사랑을 모르겠다, 사랑은 어렵다, 사랑은 알 수 없다'라고 정리된다. 그리고 종류와 유형별로 느낀 사랑에 대한 공통적인 느낌은 있어서 규정지을 수는 없으나 사랑으로 통하는 공통의 이유는 확실히 있다. 결국 공통점은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해서 도돌이표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고민하는 방식이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삶, 인생의 정답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정답이 없는 삶, 인생에 스스로의 정답은 정할 수 있듯이 사랑의 종류로 스스로의 정답은 정할 수가 있다.
그렇다 보니 오늘의 정답이 내일은 정답이 아닐 수가 있다. 참고로 사랑과 섹스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추구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사랑의 정의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옳다고 정의할 수 없다는 것에 가깝다. 지금의 정의들은 공통으로 느끼는 느낌을 제외하고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언제든 정답이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랑을 섹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랑이 섹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우리는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아니란 것을 면밀히 알기 위해서 섹스가 아닌 사랑을 먼저 알아야 한다. 사랑의 유형과 종류가 나눠지기 전에 우리가 느끼는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어서 알아볼 것이며 질문으로 마무리하겠다.
당신은 사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사랑은 섹스와 하나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