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 남사친(미완성본)

사랑

by 오필

여사친 남사친 있어도 된다? 안된다?


여사친남사친 논쟁은 다른 논쟁처럼 문화적 요인이나 개인의 가치관의 영향이 큰 것은 맞으나 무엇을 하는지보다 이성인지 동성인지라는 핵심적인 전제조건에 해당하는 논쟁이다. 그래서 된다, 안된다로 딱 잘라서 정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다양한 가설과 사실 속에서 각자의 수용범위를 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된다, 안된다 보다는 친분을 명분 삼는 이성과의 관계를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지 혹은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지의 문제에 도달하며 설정된 수용범위를 따라 접근하다 보면 논쟁의 요지에 접근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친구는 어디까지 수용되는가? 어린 시절이라면 나이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나이로 특정 짓기에는 애매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특정 지을 수 있는 것으로 오래된 관계인지 이성으로 여기지 않고 순수하게 친구로만 대하는 건지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이성친구는 없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순수하게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이 되는 사례도 있고 어린 시절엔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는데 동창회에서 불이 붙을 수도 있기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수용범위를 설정할 수는 있으나 오래된 친구, 어린 시절 친구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될 수는 없다.


결국 '이성친구는 없다'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단체로 모이는 자리, 비즈니스라면 어쩔 수 없으나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공간이더라도 둘이 만나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거다. 이 수용범위의 이유로는 이성친구는 있을 수 있지만 이성 간에 영원한 친구는 없다고 종지부를 찍는 것이고 이 종지부에 힘을 실어주는 영화나 드라마, 실제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성친구가 있는 사람입장에서는 영원히 살아본 적도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서 답답할 것이다. 친구가 이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귀지도 않을 거고 그럴 생각도 전혀 없는 진짜 친구인데 마치 이성친구가 자신을 좋아하지는 않을지 자신이 이성친구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지 의심하거나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컨트롤하면서 살아야 할 것만 같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 이성을 대하는 호감이 아닌 친구로서 호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우린 그냥 친구야!"라고 외치는 것이 가장 명확해 보인다.


결국 수용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이성친구는 없다'의 주장이 있는 한 양극단으로 나눠지니 A상황을 가정해서 각각의 입장에 접근해 보겠다. 만약 세상에 사람이 2명만 남아야 되는데 인류보존을 위해 선택된 사람이 친구로 지내던 여사친남사친이라면, 서로가 친구라고 생각하던 둘만이 세상에 남는다면 인류보존을 위한 성관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친구이상의 감정이 조금도 안 생길까?


우선 '이성친구는 있다'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정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쳐해지지 않는 이상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로 그런 극악의 상황에 쳐해 져야만 어쩔 수 없이 연인의 감정을 느껴보려 노력할지도 모르는 것이지 저런 상황에 쳐해 져도 인류보존의 목적만으로 성관계를 할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성친구는 없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앞서 이야기했던 수용범위를 언급하며 이성 간의 친구사이가 없기에 저런 결정이 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보존을 위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어도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존, 번식 인류보존을 위해서는 친구든 연인이든 중요하지 않기에 이성친구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없다고 말할 수도 있듯이 연인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없다고 말할 수도 있는 난센스 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제 여기서 '이성친구가 있다'의 입장에서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B상황을 가정해 보겠다.

만약에 '이성친구는 없다'의 상황에서 동성애 성향이라면 이성친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성애는 인정하나 '이성친구는 없다'는 입장의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정말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성친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성별의 대상이 중요한 거라면 자신은 남자고 자신의 애인도 남자인 사람은 동성과 친구로 지내면 안 되는 걸까? 안된다고 한다면 여자랑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조건이 생기는데 이성애인 여사친들의 애인 혹은 남편이 남자니까 친구로 지내면 안 된다고 한다면 동성애인 사람은 동성과도 이성과도 친구로 지낼 수가 없게 된다. 여기에 A상황에 추가해 보면 인류의 보존을 위해 성관계를 하는 것은 변함없고 이런 상황에서도 동성애 성향이 변함없다면 A상황에 쳐해 진 상대방은 생존, 번식 인류보존을 위한 매개체일 뿐 친구도 연인도 아니게 된다.


이 A, B가정을 없애고 다시 이성애로 돌아간다면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다. 이성 간에 친구가 없으면 동성애인 사람은 애인 이외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되고 단절되어야만 한다.

딴 얘기지만 이런 난해한 가정을 없애기 위해서 동성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범죄자도 인권이 있는 천부인권의 나라에서 동성애를 없애는 주장이 얼마나 받아들여지고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법적으로 동성애를 제재하고 없애려고 하더라도 동성애인 사람은 몰래몰래 동성애를 할 것이고 하다가 법에 걸리고 제재가 있다 해도 범죄자로서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는 크게 없다. 동성애로써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보다 범죄자로서 인권을 존중받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동성애인 남자가 이성친구인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고 애인인 남자만을 사랑하고 다른 남자와는 친구로 지내기도 하는 입장으로 보면 이성친구는 확실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문제는 같은 동성애 성향의 남자라도 사바사이기에 모든 남자를 연인의 감정으로 대하는 사람이라면 애인인 남자를 제외하면 동성친구를 만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동성애가 아닌 이성애의 관점으로 바꾸더라도 똑같다. 모든 이성을 연인의 감정으로 대하는지 연인과 친구를 대하는 감정이 나눠져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여사친남사친 논쟁의 요지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여사친남사친 논쟁의 기준은 사랑이 아닌 사랑과 연결된 관계에 대한 신뢰이다. 이 논쟁이 된다 안된다에서 수용범위로 옮겨간 것은 애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기준이 자기 가치관의 최소조건에 성립하는가의 관점인 것이다. 사랑과 연결된 관계에 대한 신뢰의 관점으로 보면 깻잎을 떼주고 새우를 까주고 이성친구가 있든 없든 간에 '나를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 '나만을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인하여 '이 행동, 가치관을 신뢰할 수 있는지'가 된다. 이는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로 연결되며 최소조건이 성립하지 않고 조율되지 않으면 연인관계로 지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다수의 공통된 최소조건은 애인이 자신을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것이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신뢰이다. 여기서 수용범위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신뢰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마치 사랑하면 하면 안 되는 행동처럼 용납 못하는 부분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인지 자신이 신뢰를 못하는 사람인 건지는 고민 해봐야 할 부분이다. 이성친구가 많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이성친구가 없는데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눠서 고민해 본다면 상대방의 신뢰가 중요한 것인지 자신이 신뢰를 못하는 사람인 건지는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이성친구를 애인 대체제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제라는 표현이 거부감이 들 수는 있으나 친구, 직장동료, 지인을 포함해서 이성을 볼 때 신뢰를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그것은 당연한 순리일 수 있다. 이 부분은 애인이 있을 경우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애인에게만 집중하는 전제조건이 있다면 대체제라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고 대체제는 친구로 남을 것이다.

신뢰를 토대로 보면 전 애인, 전 배우자와 친하게 지내더라도 현 애인, 현 배우자와 안정적인 관계를 영위한다면 친구로 남게 된다. 그들의 신뢰를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것은 아니고 안정적인 관계가 우선이기에 불편함을 드러냈을 때 누구를 선택하는지만 가늠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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