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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Apr 19. 2023

취미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


다시 시작한 피아노


 근래 들어 새롭게 피아노라는 취미를 시작했다.  지난주 처음으로 레슨을 받았다. 30분 간의 짧은 레슨 시간 동안 선생님은 끊임없이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내가 아예 못하는 줄 알고 도레미부터 가르칠 생각이었다고 하셨다. 낮은 음자리표를 익힐 겸 바이엘로 시작했는데 강습시간 동안 1/2 분량을 끝냈다.


 사실 그동안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취업 후에는 정신 건강보다 당장 신체 건강에 신경 쓰자는 마음에 피아노에 대한 열망을 억눌렀다(워낙 하고 싶은 게 많기도 했고). 그러다 얼마 전 사직서를 낼까 고민하던 때에 물 트라우마 가득한 수영과 9개월째 자세 연습만 하던 테니스를 홧김에 그만둬버렸다. 회사만으로도 힘든데 운동을 하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구매하고 얼마 쓰지 못한 라켓과 수영복이 마음에 걸렸지만 갈등할 정신이 없었다.


 심신이 지친 상태였지만 가만히 쉬는 것보다 뭐라도 배워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곧바로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았다. 기타를 배울 적에 스트레스 푸는 데는 음악이 최고라고 느껴 조금의 고민도 없었다. 신도시에 살고 있어 주위 음악 학원만 세 곳 이상인데, 생각과는 달리 어른 대상의 레슨을 운영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나름 힘들게(?) 찾은 지금의 학원도 성인 수강생은 나 혼자다. 학원 문을 열면 보이는 아가 책상, 아가 의자, 아가 신발장에 마치 소인국에 도착한 기분이 든다.






눈치 안 보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그 아가들 가구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마다 초보자가 되어 처음부터 시작하는 내 모습이야말로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말이다. 나이가 들며 인생에 찌들어간다고들 하지만 성인이 되고서도 무언가를 배울 때만큼은 그 반대인 것 같다. 그런데 이때, 무의식 중에 자신이 성인임을 인식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눈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성인으로서 배움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도록 막는 주범이다. 이를 이렇게나 잘 아는 나야말로 제일 유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수영을 그만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시작했지만 점점 나잇값 못한 채 과하게 겁을 먹고, 좁은 레인을 더 막히게 하는 민폐 수강생이 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물속에서의 시간은 정말 재밌었고 조금씩 물 공포증을 이겨내는 과정이 그렇게 기쁘고 뿌듯할 수 없었다. 다른 수강생 분들이 함께 힘내라고 응원해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마지막에 참석했던 수업에서 '나만 못 해.'와 같이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가 극에 달했고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무언가 새로 배울 때 어디선가 나타나는 '초보자들 사이의 고수'로 인해 마음을 다독이지 못했다. 자꾸 그 고수들을 보면 괜히 조급해졌고 나는 왜 저렇게 할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 감정이 끝내 수영에서 터졌고 신체 건강은 무슨, 정신 건강부터 챙기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피아노를 시작한 지금의 만족도는 최상이다. 피곤하리만치 남을 의식하는 성격 상, 평생 눈치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타인의 칭찬을 통해서라도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번에 무언가 시작할 때에는 눈치 보며 위축된 성인에서 벗어나 초보자로서 오로지 스스로에 집중하도록 노력해 볼 생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새로운 분야에도 빠르게 적응해 배움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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