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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Jun 16. 2023

불행한 생일을 보냈습니다

생일은 행복해야 한다는 착각

최악의 생일


 작년과 올해, 최악의 생일 주(생일이 포함된 한 주)와 생일 당일을 보내고 있다. 매번 생일 즈음에 중간고사를 치렀던 터라 스무 살 이후 마음 놓고 놀았던 적이 없지만, 그보다도 회사를 다닌 2년 간 이상하게 이맘때쯤 마음고생을 했다. 


 작년에는 거래처에 첫 실수를 해서 무지하게 깨졌다. 50군데가 넘는 거래처와의 마감 업무를 하루아침에 통으로 넘겨받아 우왕좌왕하던 때다. 이러저러해서 전화로 그 공장과 거래처 본사 구매팀에 사과하고 결국 별일 아닌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수습하느라 이틀을 진땀 뺐던 것 같다. 물론 내 잘못이지만 나를 향한 원망과 질책의 소리를 듣는 건 너무나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기분 전환 삼아 미용실도 갔으나 머리가 맘에 들지 않았고, 왜 하필 생일 주에 이런 일이 생겨서 내내 힘든 건지 무척이나 서러웠다.


 그리고 다시 생일이 다가오자 올해는 좀 다르겠지. 올해는 괜찮겠지 생각하며 나름대로 행복한 한 주를 만들기 위해 조심히 행동했다.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업무를 하며 잔잔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직원 한 사람이 퇴사하면서 많은 양의 업무가 넘어온 것이다. 거기다 갑자기 나만 불합리하게 복지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상황... 일단 이에 대해 다음 주에 논의할 예정이므로 이번 주는 꼼짝없이 온갖 스트레스로 마음의 짐을 안게 되었다. 1년 내내 막내이자 신입으로 여러 일을 떠맡으며 불안정한 업무 경계를 참아 온 게 터지기 직전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 자세히, 아주 낱낱이 잘근잘근 씹기로 하고...




서른 번째 생일, 아담하게 조각 케이크로


생일 축하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


 아무튼 그렇게 생일 당일(15일)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생일이라 들뜨는 마음이 점점 작아지는 게 느껴지고 본인의 생일인지 몰랐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점차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있다. 생일엔 행복해야 되고 특별해야 하고 그 하루는 완벽해야 한다는 바람 내지는 착각이다.


  앞서 말했듯 이번 주 나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우울했고 회사를 그만두니 마니 불만을 토로하며 부모님과 이야기하다 결국 싸움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 싸움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생일 주'와 '생일'의 의미에 취해 작년이고 올해고 왜 이맘때 힘든 일이 일어나는지 분노가 차올랐다.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행복해야 한다는 틀 안에 집어넣어 의미를 부여하고 결국 '안쓰럽고 불행한 나'로 만들어버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나 역시 습관처럼 친구들 생일에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 보내' 등의 말을 보낸 게 과연 옳은 것이었나 고민되었다.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 특히 직장인이 되고서는 평소와 같은 출근, 평소와 같은 업무 처리를 하는 날일 뿐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몇 주 전부터 설레기 시작하는 일 년에 단 하루뿐인 날이지만,

그 기대와 행복 강박에서 조금씩 벗어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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