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연차를 사용하여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올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불어나는 업무량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시점에 연차를 하루 냈다. 단 하루를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 놀이공원이 떠올랐다. 놀이공원이라는 장소 자체를 굉장히 좋아했던 터라 언젠가 가야지 벼르고 있었다. 결국 언제나처럼 내 솔메이트인 엄마께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고 생각보다 흔쾌히 승낙해 주신 엄마와 롯데월드로 향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지하철을 타고 갔던 과거와는 달리 내가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가니 느낌이 묘했다. 편하기도 하면서 '롯데월드 주차장은 이렇게 생겼구나'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지하상가를 지나 입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니 심장이 두근거렸고 악기를 연주하며 맞이해 주는 관악대 분들 덕에 입에서 절로 "와-"하는 소리가 나왔다. 이때까지는 참 좋았다.
실망이 가득했던 문제의 혜성특급
가장 먼저 혜성특급을 타러 갔다. 고등학생 때 친구 혜민이의 추천으로 처음 타본 후 너무너무 재밌어서 종종 생각났던 놀이기구였다. 특히 처음에 그 넓은 공간을 빙 돌아내려가며 보았던 우주 모양의 장식이 아주 인상 깊었다. 그렇게 긴 줄을 기다려 약 10년 만에 긴장 반 떨림 반의 마음으로 타고 나왔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어렸을 때 탔던 그 기분이 나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세월의 흔적들이 내가 생각해 왔던 상상 속 그때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그 자리 그대로였을 장식들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고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만족해?"라는 엄마의 질문에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뱉을 수 없었다.
나보다 더 신난 우리 엄마
나보다 엄마가 더 재밌어하셨다. 갑자기 혜성특급 앞의 '번지드롭'이 너무 궁금하다고 재밌을 것 같다고 내 팔을 끌어당기셨다. 중학생 때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타보고 질겁을 했던 터라 나는 못 타겠다고 버텼고 결국 엄마 혼자 타셨다. 공중그네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뭐가 무서워? 하나도 안무섭구만."이라는 말과 함께 혼자 한 번 더 타고 오셨다.
갑자기 놀이기구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신 엄마는 이것저것 다 타고 싶어 하시는 듯 보였다. 나는 점심 먹을 때 이미 지친 상태였는데 결국 오후 다섯 시까지 후룸라이드를 비롯한 각종 기구를 섭렵하고 절대 안 탈거라 다짐했던 바이킹까지 탄 후에야 롯데월드에서 나올 수 있었다.
엄마는 어린아이가, 나는 어른이 되었다
사실 내가 엄마를 끌어들인 이유에는 나처럼 쫄보가 아니실까 하는 생각이 컸는데 엄마는 나 '때문에' 바이킹의 한가운데에 앉았다며 불평하는 분이셨다. 이 날 엄마는 "처음으로 놀이공원에서 이렇게 놀아본 것 같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셨다. 지금까지 놀이공원은 그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 놀아주기 바빴던 곳이라 당신께서 놀이기구를 좋아하고 잘 타는지 모르셨던 것이다. 이날 이후 끊임없이 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중이다.
반면에 나는 커버린 내 모습을 또 한 번 느낀 날이었다. "생각보다 재미없어.", "힘들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 나에게는, 어릴 땐 컸던 동네가 어느 순간 작아 보이는 딱 그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놀이공원에 있다는 것만으로 바깥과 단절된 채 그저 나만의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콩깍지가 벗겨진 것인지, '놀이공원이 이렇게 별 거 아니었나?' 싶었다.
이 날 나는 몇 번의 업무 카톡과 전화를 주고받았고 업무 이메일이 몇 개가 쌓였을지 내내 걱정했다. 결국 잠시라도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음 편히 놀지 못한 꼴이었다. 마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보고 "왜 모자를 그렸니? 이럴 시간에 공부나 해!"라고 말하던 어린 왕자 속 어른이 된 것만 같아 씁쓸했다.
나는 이제 쉽게 감동받지 못하고 쉽게 들뜨거나 놀라지 않는, 알 건 다 아는 지친 직장인 1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