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고 있다. 근무시간을 제외하고서는 그저 부모님과 함께 있는 듯하다. 친구들은 한 달에 두, 세 번 정도 만나고 나머지는 부모님과 놀러 다닌다. 여행 메이트 역시 1순위는 부모님이다. 그중에서도 해외여행의 경우 친구보다도 가족끼리 계획하는 게 먼저였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으레 물어보는 "주말에(휴가 때) 뭐 했어요?", 그리고 그 뒤에 붙는 "누구랑요?"와 같은 질문. 처음에는 솔직하게 '부모님과 갔다.', '엄마와 다녀왔다.'라고 대답했지만 매번 그 나이 먹고 부모님이랑 다니냐는 표정과 말들이 점점 불편해졌다. "애인을 만들어서 애인이랑 놀아야지~"라는 말은 덤으로 따라온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줄은 몰랐다. 중, 고등학교 때는 다른 애들과 같이 적당히 가까웠고 대학교 1, 2학년 때까지는 과 생활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부모님은 피자 가게를 하셨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친구들과 노는 것에 죄책감이 생겼다.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게를 지나치면 부모님을 두고 가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부모님을 더 챙겨야 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다음에 꼭 모시고 간다든지, 포장해서 가져다 드리며 죄책감을 덜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알려드리자고 생각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이제는 부모님도 함께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셔서 으레 나도 같이 가겠거니 하신다.
우린 너무 많은 추억을 쌓고 있어
이렇게 부모님과의 유대가 깊다는 사실이 걱정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오랜 시간 부모님이 삶에 가장 중요한 분들이다 보니 나중에 두 분 중에 한 분이라도 안 계시면 어떻게 버티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괴롭고 더 슬프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리고 연세가 들수록 달라지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며 그 걱정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어느 날 갑자기 대뜸 엄마가 하늘로 가고 나면 어떡하냐며 나 혼자 남아 힘들어할 시간이 걱정된다고 하셨다. 우리가 너무 많은 추억을 쌓고 있다고. 사진을 보거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엄마 생각에 계속 눈물이 나면 어떡하냐고 하셨다. 한 번도 그런 속내를 비치신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날 엄마의 말씀을 듣고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매우 놀랐다.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때까지도 내 걱정을 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울컥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특히 잠자리에 누울 때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먼 훗날의 일까지 걱정하게 된다. 십수 년을 이런 걱정으로 힘들어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니 어린 나이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당시를 마음껏 즐기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지금도 이 걱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번씩 지금을 즐기자고 환기하며 나를 깨우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