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이후 한 해 두 해 지나가면서 눈이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상태로 첫 연애 시작이 점점 늦어져 갔다. 한 개그우먼이 예능에 나와 "나는 모든 것이 느린 사람이었다."고 표현했는데 내가 딱 그랬다. 취업도 늦고 연애도 늦고.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시간의 개념에 맞추지 못하는 인생이었다.
모쏠 시절,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기 전에는 연애가 사치라고 생각했던 나는 취업 이후에도 한참을 솔로로 지냈다. 회사만 왔다갔다 하는 스케쥴에 익숙해지며 가족과 함께하는 혹은 홀로 지내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연애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연을 어디서 만들어야할지, 어떤 사람을 만나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다들 어디서 만나는지 모르겠어."라고 이야기하던 친구의 말이 깊게 와닿던 때였다.
당시의 나는 반복적인 생활에 지쳐 소모임을 적극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전시회 소모임을 시작으로 '한 번 나가보니 별 거 없데.'라는 생각이 들어 영어 소모임에도 가입했다. 그 사이 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소위 말하는 '대쉬'를 한 적도 있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현 남자친구 미안...)
사실 외로움보다도 연애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싶었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던 게 가장 컸다. 다들 이야기하는 그 감정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애의 참견'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연애가 고민이라니 편해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장 회사가 걱정이고 돈이 걱정인데. 뿐만 아니라 애인을 만나느라 주위 사람을 소홀히하는 친구들에게 서운함을 느낀 게 10년 가까이 되니그 감정들이 궁금해졌다. 과연 나는 사랑 앞에서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대뜸 소개를 받아보라는 친구의 제의로 지금의 연인을 만난 후 정말 많은 게 변했다. 이제는 사랑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위대한 감정이라는 말도 어느 순간 가슴 깊이 다가왔다. 가장 놀랐던 점은 평소 싫다고 생각했던 요소인데 남자친구는 마냥 좋았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콩깍지...
그 외에도 일상에서 맞이한 큰 변화가 몇 가지 있다.
1. 매일 보고싶어
일단 연애 후 주말은 당연하게 남자친구와 보낸다. 물론 친구들과도 약속을 잡지만,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그 점이 마음 한 켠에 불편함으로 남아있지만 연애 초기에는 인천과 평택, 지금은 인천과 광양의 장거리 커플로서 연인과의 주말을 포기하기란 참 어렵다. 매일 만나고 싶다. 늦어버린 첫 연애만큼 하고싶은 것이 많았던 나는 사심을 채우고 있다. 놀이공원, 아쿠아리움, 워터파크, 보드게임 카페 등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연인과보내면서 부모님께서 정말 서운해하셨다. 일반적인 가정보다 더 유대감이 강했던 우리,특히 매주 카페라도 같이 갔던 엄마는나를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셨다. 지금까지도 주말에 나간다고 하면 잔소리를 빙자한 서운함을 내비치곤 하신다. 처음에는 큰 죄책감이 들었지만, 내 인생을 위해 사랑을 찾는다 생각하고 균형을 맞추려 노력중이다.
2. 감정소모
3년의 연애 끝에 솔로가 된 (친)오빠는 연애를 할 때 감정 소모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연애 7개월가량 접어드는 지금, 슬슬 연인과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눈물이 많아지고 사소하게 서운한 일들이 많아졌다. 대부분은 연락에 관한 문제로, 내가 서운함을 느끼곤 한다. 남자친구는 현장 근무로 연락을 자주 못하고, 퇴근 후에도 피곤해서 일찍 자고 싶은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림에 할애하니 점점 서운한 게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금세 눈물이 고인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꼴불견이고 피곤한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남들이 이야기하던 감정 소모라는 것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첫 연애를 시작하며 몰랐던 감정을 알게되면서 시야가 아주 넓어진 기분이다. 사랑 노래, 로맨스 영화/드라마/소설, 사랑 시까지 마음 깊이 다가온다. 그리고 또 하나,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을 얹지 말자는 반성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