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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Mar 20. 2023

피해자의 시간은 셀 수 없다

사내 성범죄 고발 후, 나의 시간은 이랬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하며 참 행복했다.

긴 취업준비 기간 끝에 만난 회사였고 공무원 시험 대신 선택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직장인으로서 당당히 근무하며 번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던 터라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 삶을 새롭게 그려나갔다.

1년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취준생으로서 바닥이었던 자존감을 회복하며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1월의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고 잔잔했던 회사생활에 큰 물결이 일었다.






2차 가해가 더 힘들다


 성희롱과 성추행은 지금까지 세기 힘들 정도로 당했다. 

'그저 누군가를 향한 관심이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순간 '어?' 싶은 발언도 많이 들었고 학생일 때에는 체벌과 지도라는 명목 하에 팔뚝에서도 저 깊은 안쪽, 굳이 골라내 꼬집히기도, 끈적하게 등과 어깨를 쓰다듬는 걸 참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조직에서도 영락없이 이런 일을 겪었는데 처음으로 "나 이런 일 당했어요"라고 고발을 했다.


 종종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에서 피해자이자 고발자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다른 피해자들은 본인 탓이라 여기며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때마다 막연히 내가 그런 일을 겪는다면 절대 자책하지 않겠다고, 가스라이팅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그 다짐을 지켰냐 하면, 아주 처참히 실패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말 끊임없이 내 잘못인 양 몰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피해자로서 티끌 하나도 없어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어디까지 가만히 있어야 피해자로 인정해 주고 가해자에 합당한 처벌을 줄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묻히겠지.


결국 피해자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일과 관련해 한 것이라곤 고발뿐이다.

제대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 '숨기지 않고 떠벌인 애'가 되어 있었고, (애초에 '내'가 겪은 일인데 '내'가 왜 숨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하라는 눈초리를, 더 이상 끌지 말라는 은근한 협박을 들어야 했다. 결국 가해자는 쏙 빠진 채 제삼자와 피해자만 남았고, 피해자는 따가운 눈총과 가시 돋친 말들을 감내해야 했다.



사건 당일로 끊임없이 돌아간다


 또 하나 괴로웠던 것은 스스로 끊임없이 그 사건을 회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립된 절차가 없어 그날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했다. 그러면서 내가 느꼈던 불쾌하고 모욕적인 그 사람의 악력이 점점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뿐인가, 주위에서 '징계를 내릴 정도의 일은 아니다, 지난번 000님이 겪은 일이 더 심했다' 등 오만 형태의 가스라이팅을 하니, 진짜 이것이 별것 아닌 일인지 스스로 검열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일로 힘들었던 만큼 가해자도 똑같이 힘들게 할 것이라는 단호한 결심과는 달리 그저 얼굴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너무나 불편하다. 자꾸 자신감이 없어지고 무언가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지 나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지 걱정하게 된다.


 결국 그들이 그렇게 원했던 가스라이팅을 아주 제대로 당했다고 할 수 있다.

뭐 한 것도 없이 '이제 지쳤으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도록 만들었고 진짜로 그렇게 그만뒀으니까.



가장 중요한 것 : 피해자 되지 않기


 가해자 위주의 법 체계를 가진 우리나라(우리나라뿐만이겠냐만은)에서는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순결한 피해자임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러니 점점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지고 악순환은 또 반복되겠지.


 결국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영부영 일이 마무리되고 이제 와서 그 기간을 되돌아봤을 때 모든 시간들이 마치 그대로 도려낸 듯, 신경이 죽어버린 수술 부위를 만지듯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냥 텅 비어있는 것 같고 어렴풋이 저릿한 기분만이 들뿐이다.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고 버텼는지 도무지 모르겠으며, 그저 오만가지 괴로운 감정에 휩쓸려 살아'졌'던 것 같다.


 그래서 피해자로서 보낸 시간은 하루, 이틀 날짜를 세듯 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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