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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ㅠ Aug 13. 2023

효창운동장에서 시작된 나의 축덕인생

아빠의 축구사랑


-1-


다섯 살 때 나는 아빠의 주도하에 온 가족이 효창 운동장에 갔다.

아빠가 좋아하는 축구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아마추어 팀들 간의 경기가 있던 햇살이 따사로운 화창한 일요일 오후 2시쯤이었다. 생애 처음 축구를 보러 가서 아는 선수가 없었고, 규칙도 모르기에 흥미 떨어졌다. 그래서 경기 내용보다는 우뚝 솟은 전광판 밑그늘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켜고 라면 먹은 기억이 더 크게 남았다. 엄마가 끓여준 봉지라면의 짭조름한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첫 경기는 그렇게 먹는 이야기만 남았다

그 후 아빠와 두세 번 더 효장 운동장에 갔다. 축구에 흥미를 붙이기 위해 규칙을 몰랐던 나는 아빠에게 폭풍질문을 날렸다. '사람이 공 앞에 있는데 심판이 왜 호루라기를 부는 거야?' '축구는 왜 11명이 하는 거야?' '저 행동은 왜 카드를 받는 거야?" 등등 하나둘씩 답변을 얻게 되며 나의 축구 지식은 늘어났다.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여담으로 당시 우리 집은 동대문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아빠가 축구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효창 부동산을 방문해서 효창공원 쪽으로 이사할뻔한 적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매일매일 경기 보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에 가서 축구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시설이 효창운동장보다 낙후되었는데 그런 이유를 빌미를 삼아 경기장을 밀어버리고 DDP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아빠는 축구를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기존에 하던 신문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잡지사를 만들어 축구저널 잡지에 편집장 및 사장이 되기로 한다. 그러나 잡지 시장에서 외면받은 축구저널은 본전도 거두지 못하고, 많은 대출을 받았기에 우리 집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어느 날,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집에 들어와 빨간딱지를 붙였다. 당시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5살의 지식으로 빨간색이라는 색깔로 추정했을 때 뭔가 좋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 후 우리 집은 이곳저곳 자주 이사 하게 되며 친구가 점점 사졌다.

그때부터 나는 축구가 싫어졌다. 물론 축구는 잘못한 게 없지만 아빠가 축구를 사랑해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 했기에. 아빠도 싫고 축구도 싫어진 나는 흥미를 잃었고, 자존감도 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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