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ㅠ Aug 14. 2023

전설의 2002 한일 월드컵

밀레니엄 시대, 찬란한 황금 신화


-2-


아빠 때문에 축구가 싫어졌던 나는 축구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2002년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과 일본의 공동 월드컵이 개최한다. 솔직히 당시에 나는 축구를 보기 싫었지만 언론, 한강, 음식점, 허름한 구멍가게까지. 한국의 모든 포커스가 월드컵으로 쏠려 있어 사실상 반강제로 보게 되었다. 또한 내 인생 첫 월드컵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과 같은 조에 속했다. 첫 경기는 폴란드전, 엄마는 집이 너무 덥다며 한강에서 시원하게 보자고 했다. 초대형 스크린에서 봤다.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 앞에 앉아 치킨과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었다. 이을용 선수의 크로스를 받아 황선홍 선수의 헤딩골로 앞서 나가는 한국, 한국의 첫 골이 들어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점프하며 박수쳤다. 유상철 선수의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한국이 2대 0으로 첫 승리를 거뒀다.

두 번째 미국. 미국전은 평일로 내 수업시간 도중 경기였는데, 선생님이 수업하다가 시계를 보더니 "얘들아 이 시간에 무슨 수업이냐 축구나 보자" 하면서 판서한 것을 다 지우고 TV를 켰다. 미국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받았던 한국. 그러나 아쉽게도 허공에 뜨며 득점에 실패했다. 미국이 선제골을 넣고 끌려가던 와중 안정환 선수가 헤딩골을 넣으며 1대 1 극적인 무승부를 만들었다. 세리머니로 헐리웃 액션으로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을 빼앗은 안톤 오노를 재현했다.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세 번째 포르투갈. 앞선 두 국가보다 가장 강한 상대였다.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며 같이 봤다. 포르투갈의 거친 파울로 퇴장당하며 수적 우세였던 한국은 후반전 박지성 선수의 가슴 트래핑 이후 빠른 땅볼슛을 쏘며 골인. 골 넣고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1대 0으로 승리. 그렇게 한국은 16강 진출에 성공한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최약체로 평가받던 한국이 16강에 오르다니. 이건 정말 기적이라는 말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축구를 잊고 살았던 나조차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게 축구였지" 하며 다음 상대조차 이길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16강 상대는 이탈리아.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강한 유럽팀 중에 하나였다. 첫 골을 이탈리아에게 내준 후, 설기현 선수의 기가 막힌 동점골을 기록하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강한 반칙으로 한국 선수들이 많이 다쳤다. 팔꿈치를 맞아 코가 부러지거나, 강한 태클로 다리를 다쳤다. 그러나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한국 선수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끝까지 악에 받쳐 뛰고 또 뛰었다. 연장전에서 크로스를 받은 안정환 선수의 헤딩 골든볼로 한국은 또 한 번 기적을 일궈내며 8강 진출에 성공한다. 나는 집에서 점프하며 대한민국을 크게 외쳤다! 옆집에서도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다.

8강 스페인. 지금까지 만난 팀 중에 가장 어려운 경기로 예상되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주변 호숫가에 있던 대형 스크린에서 보게 되었다. 전후반 모두 열심히 뛰었지만 결정타를 만들지는 못했다. 골을 못 넣은 양 팀은 지옥의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다. 양 팀 골을 넣다가 호아킨 선수의 방향을 읽고 슛을 완벽하게 막은 이운재 선수의 깍지 장면은 모든 한국인의 박수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마지막 키커 홍명보 선수가 슛을 성공하며 함박웃음 지었다. 과묵한 얼굴의 그가 웃는 모습에 나 또한 웃음과 박수로 보답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무려 4강에 진출하게 된다. 이건 꿈이 아닐까? 나의 탱글한 볼을 꼬집었는데 아팠다. 현실이었구나 하며 안심했다. 이러다 우승하는 게 아닐지 설레발쳤다.

4강 독일. 우리 집 가까이 있던 어느 교회 스크린에서 시원하게 봤다. 전반전 한국이 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었지만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다 후반전 아쉽게 역습으로 상대에게 골을 내주며 1대 0 패배. 단 한골 차이였기에 정말 정말 아쉬웠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앞선 이탈리아, 스페인도 강했지만 독일은 그 두 팀과는 다른 강한 수비와 압박으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3,4위전으로 내려온 한국은 터키 (현 튀르키예)와 만나 3위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으나 전반에 3골을 내주며 한국 선수들이 체력과 정신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걸 느꼈다.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3대 2, 4위로 월드컵을 마무리하게 된다.

한여름 밤의 꿈같았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내 인생에서 잊히지 않는 영광의 순간을 꼽으라면 당연히 1위다. 태극전사들의 불타는 투혼과 강한 정신력에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다시는 없을 찬란한 유산이다.


이운재, 김병지, 최은성, 현영민, 최진철, 김태영, 홍명보, 이민성, 최성용, 김남일, 유상철, 이영표, 이을용, 윤정환, 안정환, 박지성, 송종국, 최태욱, 설기현, 최용수, 이천수, 차두리, 황선홍.


꿈과 희망을 선사한 23인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효창운동장에서 시작된 나의 축덕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