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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ㅠ Aug 26. 2023

세상은 빨강과 파랑으로 나뉘었다. 슈퍼매치

FC서울 VS 수원삼성


-11-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몹시 더운 초여름 날씨였다. 서울에서 개막전을 본 이후로 몸에 익숙한 서울 홈 경기장만 갔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K리그에서 뜨겁기로 유명한 더비, 슈퍼매치를 보러 수원월드컵경기장로 첫 원정 경기를 보러 갔다. 황의조 선수의 임대 마지막 FC서울 경기였기에 나에게 의미 있는 경기였다. 군 생활 이후 오랜만에 수원에 가는 것이기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제대한 사람은 그쪽 방향으로 오줌도 안 눈다고!"

신림에서 어떻게 가야 하나 네이버 지도를 켜서 확인하니 빨간 버스로 가는 게 빠르다고 적혀 있었다.

사당에서 타면 되는 거다. 역에서 내리고 버스 정류장에 FC서울 유니폼을 입은 두 여자가 있길래 따라가면 되겠다 싶었다. 버스 어플에선 도착이 떴으나 30분이 지나도 타야 하는 버스는 오지 않았다. 뭐지 했는데 더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서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길래 뭔가 했더니만... 손해 봤다.

시간은 점점 가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원래 타야 하는 버스 대신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빨간 버스를 탄다. 화성 정문 앞에서 내렸다. 화성에서 수원 경기장을 가는 법을 찾았는데 걸어서 가면 뺑 돌아서 가기에 40분 넘게 걸린다. 택시를 타면 30분 이상 단축 할 수 있었다. 지체 없이 택시를 탄다. 어차피 덥기도 했고.

택시 기사님이 나의 에코 가방 안에 있던 FC서울 머플러를 보더니 "축구장 가시나 봐요?"

"네 맞아요 ㅎㅎ" 알고 보니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택시기사님은 수원 토박이 출신이고, 예전에 수원삼성 서포터즈였다고 한다. 지금은 택시를 몰아야 하기에 수원 경기장에 갈 시간이 없다고 했다. 기사님이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때는 남자던 여자던 분위기에 취하면 속옷 바람으로 꽹과리를 치며 응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시민의식이 많이 성장했고, 특히 SNS가 활성화돼서 지금 그랬다간 OOO 민폐남, 민폐녀로 평생 인터넷 낙인찍혀서 그런 장면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수원삼성엔 안정환, 서정원, 조원희 선수가 잘했다며 칭찬하셨다. 내가 몰랐던 수원삼성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서 택시를 타는 동안 심심하지 않은 동행이었다.

수원 경기장 앞에서 내리고 목이 말라서 가까이 있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이곳 수원 경기장의 애칭은 빅버드인데 왜 빅버드인가 했더니 날개 모양으로 지붕이 열렸다 덮인다! 특이한 모습이 흥미를 돋궜다. 경기 시작 30분 전, 예매해 둔 남측 원정석에 자리를 찾고 앉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였기에 얼굴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은 내 좌석 쪽으로 올라오며 햇빛이 강하게 쪼아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자 가져올걸... 머플러로 터번처럼 만들고 햇빛을 가려본다. 전반 30분쯤 좌석에서 나와서 더위를 식히고 목말라서 칭다오 컵 맥주를 마신다. 이제야 몸이 시원해졌다. 전반엔 양 팀 열심히 치고 박았지만 골을 나오지 않았다. 후반에도 골이 들어갈 듯 말듯한 아슬아슬한 긴장감으로 필드는 고조되었다. 그러다 후반 86분, 윌리안이 개인 측면 돌파로 골대 앞에서 슛을 하고 성공한다! 세리머니로 상의 탈의 후 원정석으로 와서 포효했다!! 이후 서울에게 위험한 순간도 몇 번 있었지만, 리드를 유지하며 FC서울이 승리를 가져온다.

경기 시작 전부터 북측과 남측, 홈과 원정 팬들의 우렁찬 응원소리로 경기장 무너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치열한 서포터즈들의 응원전으로 안 그래도 햇빛 때문에 뜨거운데 더 뜨거웠다. 빅버드는 용광로 같았다.

경기 종료 후, 원정팬들의 뒤풀이로 다 같이 모여서 승리의 함성을 발사한다. 같은 스포츠에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것에 대한 소속감, 자부심이 똘똘 뭉치는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수원이라는 군생활 장소, 시간 낭비한 버스 기다림 등 이런저런 이유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생각해 보면 원정 경기가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도 고된 일정이라는 걸 느낀 하루였다. 그런 가운데 승리라는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홈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짜릿한 순간이다.

앞으로 더 많은 전리품을 챙길 수 있는 나날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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