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을 조용히 벗으며
저녁 7시,
나는 디오니소스 앞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때 그 날처럼,
계단 아래로 은은한 조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이어 준식이 나타났다.
코트를 벗으며 웃었다.
"추억의 장소네?"
"그러게.
그때랑 똑같은데, 느낌은 좀 다르다."
우리는 나란히 계단을 내려가,
그때 앉았던 자리로 조용히 앉았다.
조명이 여전히 낮고,
잔잔한 음악은 여전했지만,
둘 사이의 공기는 조금 달랐다.
"여기 오니까 좀 묘하지 않아?"
준식이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땐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지."
우리는 칵테일을 하나씩 시켰다.
그때처럼, '디오니소스의 눈물'을 다시 주문하며 웃었다.
"그날 너 이거 마시고 표정 찌푸렸잖아."
"너무 달았어. 그리고 약간 오글거렸어 이름이."
"지금도 오글거려."
잔이 앞에 놓이고,
우리의 대화도 슬슬 무르익기 시작했다.
"은정아."
준식이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응?"
"요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나는 잔을 들고 있던 손을 잠깐 멈췄다.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
준식은 웃지 않았다.
장난이 아닌, 진심 어린 질문처럼 보였다.
나는 되묻듯 말했다.
"있으면 안 돼?"
그는 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말했다.
"안 되는 건 아닌데…
괜히 신경 쓸 것 같아서."
디오니소스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정적처럼 조용해졌다.
술잔 사이, 눈빛 사이.
우리 사이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너한테 누가 생기면 신경 쓸 것 같은데."
준식이 나를 바라봤다.
눈빛이 흔들렸다.
아무 말 없이, 깊게.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처럼 칵테일은 달았고,
그때보다 마음은 쓰렸다.
아무 말 없이 잔을 부딪친 그 순간.
우리 사이의 거리도 살짝 줄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