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트, 그 이름

우리가 아닌 그 사람의 흔적

by Dㅠ

경기 후,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해물파전과 소주를 마셨다.

“오늘 진짜 재밌었다.”
“그치? 네가 유니폼 맞추자고 했던 말도 생각나고.”

분위기는 부드러웠고,
적당히 달큰한 알코올에
기분도 적당히 풀렸다.

은정이 말했다.

“우리 집에 갈래?
2차는 거기서 마시자.
오랜만에 사람 손 탄 술잔 꺼내야겠다.”

은정의 원룸.
침대 맞은편엔 책장이 있었고,
그 위엔 작고 낡은 노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준식은 무심결에 그 노트를 집어 들었다.
검은색 커버에, 아무 글씨도 없는 표지.

호기심에 첫 장을 넘겼고,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월 3일
대희 보고 싶다.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나를 안아줬던 날이 계속 떠오른다.


1월 9일
그 사람의 체온이 그립다.
나는 왜 매일 이렇게 멍청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1월 20일
준식이에게 미안하지만,
아직 마음 한구석이 대희에게 묶여 있는 것 같다.


준식은 페이지를 넘기다 말고,
갑자기 손을 멈췄다.

그리고,
그 조용한 밤을 가르듯
목소리를 냈다.

“…왜 이걸 아직도 갖고 있어?”

은정은 술을 따르다 말고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뭐…?”

“이 노트.
왜,
아직도 이걸 네 방에 두고 있는 거냐고.”

그의 말투는 평소와 달랐다.
평소의 담담함이 아니라,
숨기려 해도 새어 나오는 분노였다.

은정은 잠시 말을 잃었고,
준식은 계속해서 말했다.

“‘대희 보고 싶다.’
‘관계할 때의 온도가 그립다.’
내가 네 곁에 있는 지금,
이걸 이렇게 써놓고…
그걸 아직도 갖고 있고…
심지어,
보이는 데 두고 있다니.”

은정은 입을 열었다.

“그냥…
그냥 미처 버리지 못했을 뿐이야.
정리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나도 몰랐어.”

“몰랐다고?”

준식은 노트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이 은정의 심장에도 전달되었다.

“내가,
이렇게 애쓰고 있었는데…
넌 아직도,
그 사람 그림자 안에 있었구나.”

준식은 술기운도, 분위기도
모두 단숨에 걷어내듯
문 쪽으로 걸어갔다.

“준식아… 잠깐만, 그건—”

“실망이야. 정말.”

문이 닫혔다.

딱,
그 소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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