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고도 흔들리는 이유
선을 긋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편해진다.
퇴근이 빨라지고, 일이 덜 쌓이고, 마음도 조금 가벼워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다시 흔들린다.
“요즘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예전처럼 그냥 해줄까.”
“괜히 나만 까다로운 사람 된 것 같네.”
그리고 다시 “괜찮아요”라는 말을 꺼내고 싶어진다.
이 순간이 온다고 해서,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우리는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다.
부탁을 받으면 받아주고,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먼저 물러난다.
그 방식은 힘들었지만, 익숙했다.
그래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불안해진다.
“이게 맞나?”
익숙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선을 긋고 나서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결과가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다.
나를 까다롭게 보진 않을까
협조 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예전보다 정 떨어졌다고 느끼진 않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변화를 오래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늘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 속에 살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는 그저 등장인물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받아주면 마음이 편해진다.
관계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고,
괜히 생겼던 긴장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 가지 않는다.
며칠 뒤 다시 같은 상황이 오고,
같은 피로가 반복된다.
그래서 이 순간을 지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지금 배려를 하는 걸까,
아니면 불편함을 피하려는 걸까.”
배려라면 괜찮다.
하지만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결국 그 불편함은 더 크게 돌아온다.
선을 한 번 긋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사람도, 관계도, 나 자신도
새로운 기준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가끔은 죄책감이 들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예전의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에게 괜찮은 사람은 결국
어디선가 계속 무리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편안한 사람은
오래 버틸 수 있다.
회사에서 살아남는 건,
잘 참는 사람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사람이다.
다음 글에서는
선을 긋고 나서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는 변화,
일은 줄지 않았는데 왜 덜 힘들어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회사에서 나를 덜 소모시키는 이야기들을 계속 이어간다.
이런 글이 필요하다면 구독으로 이어줘도 좋겠다.
그리고 하나 묻고 싶다.
요즘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