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애송이 김대희

by Dㅠ

2013년 10월 어느날 막 제대하고 난지라 뭐 딱히 가진 자격증도 없었고 기술도 없었던 지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상담원 모집을 하는 어느 가구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중견 기업이라 왠만한 사람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나는 그렇게 가구에 관심 있던 사람은 아닌지라 입사하고 나서 그곳이 조금 유명한 기업이라는 것을 알았다. 입사 하기 전에 상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흔히 말하는 감정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기에 돈을 번다는 기대감과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부담감 두 감정이 교차하면서 경쟁률을 뚫고서 입사 했을 때 만감이 교차 했다. 일단 일주일 정도 실무에 대해서 부파트장님께서 교육을 진행 하셨고 일주일은 실무 투입하여 실제로 고객들과 통화 진행을 했다. 당시 스크립트가 존재 했었기에 그것대로 읽으면서 고객들과 진행하게 되었고 다행히도 내가 생각했던 걱정에 비해 실무 투입 일주일은 큰 문제 없이 잘 넘어 갔었다. 뉴스나 유튜브에서 본 그런 정말 악질적인 사람, 끊임 없이 괴롭히며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는 지금까지도 만나 보지 못했다. 띠리리리 벨이 울리면 번호만 뜨고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으며 착한 고객인지 나쁜 고객인지도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말소리로만 상대의 성향과 도움 요청 사항을 파악하여 최선의 해결을 해주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고객들이 도움 요청을 하고 나는 그것을 도와준다. 해결 해주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 참으로 기분이 좋다. 이 직업을 경험하게 되고 난 후 말투나 언어습관이 많이 고쳐지게 되었다. 이 외에도 다른 직업들도 경험 해봤지만 지금도 이 직업을 하고 있는 이유는 더러운 고객들도 몇몇 있지만 나의 조그만한 행동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그 쾌감 때문에 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 당시 나는 지금 성격과 다르게도 사람들이 맞춰주는 것에 따라가기에 급급한 그런 이도저도 아닌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괜히 말 꺼냈다가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에 대해서 불안에 떨었고 가끔씩 파트장님께서 "대희씨 우리 점심 뭐먹을래요?" 할 때 작은 목소리로 "파트장님 원하는거 먹을게요" 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러던 김대희가 많은 고객들과 대화를 하면서 공감 능력과 대화 능력이 많이 늘었다는 걸 느꼈다. 그걸 느낀건 입사한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느꼈었다. 누군가 말을 하지 않으면 말을 꺼내지 않던 나였으나 어느 순간 내가 주도적으로 화제를 꺼내고 사람들과 대화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경험 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웃고 떠드는 그 행복을 찾고 있는 나를 보면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파트장님과 부파트장님들이 매우 사이가 좋으셨고 회식은 한달에 한번 정해져서 하고 굳이 오고 싶지 않은 사람은 오지 않아도 되는 매우 편한 곳이었으며 파트장님 주도하에 영화 관람이나 뮤지컬 관람도 하는 그런 자본주의의 냄새가 아닌 사람 냄새가 나는 친근하고 가족 같은 회사였다. 요즘은 가족 같은 회사 라는 말이 매우 부정적인 단어긴 하지만 이 곳은 정말 가족 같은 곳이었다. 음식도 많이 나눠주고 고민 있으면 들어주고 즐거운 일 있으면 같이 웃고 소통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주의적인 회사의 모습이었다. 아쉽게도 이 회사는 내가 실적이 좋지 않았으며 나의 큰 실수로 인해 퇴사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 밖에 안든다. 2013년의 김대희는 왜 이렇게 멍청하고 생각이 없었을까. 정말로 시간을 되돌 수 있다면 그 멍청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퇴직 후 다른 상담직 회사들에 사람들은 퇴근 시간 되면 집에 가기 바빴으며 서로 일 하느라 대화 할 시간이 없으며 기계 같은 사람들 밖에 없다 라는걸 깨닿고 나서야 후회 하게 되었다. 23살 애송이 김대희는 생각이 참으로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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