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더라도 다음 주 애니메이션 보고 죽고 싶어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하루

by Dㅠ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나는 친구들과 pmp로 애니메이션을 담아서 서로 돌려가며 보던 친구들이 있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라는 당시 최고의 인기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매주 흥미로운 내용으로 친구들끼리 모이면 매주마다 봤냐 봤냐 하면서 못 봤다고 하면 스포 하면서 장난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와중 내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당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공부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하려고 했었는데 애니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발 딛고 떨어지기 전에 내려왔다"라는 많이 충격적이었던 이야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친구에게 힘내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칭찬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런 슬럼프를 극복해내고 어제 그 친구를 만났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자살 생각을 안 해본 적은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신림을 벗어나서 타 지역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학교 적응에 실패했고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친구 사귀는 법을 나는 모른다. 나는 남고를 졸업했기에 또래 여자들과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 여자들이 나에게 뭔가 물어보면 어 응 그래 같은 조그마한 의사표현만 몇 개 할 뿐이었지 눈도 못 마주치고 바닥 보고 말했다. 내가 무언가 주도적으로 했던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남자애들도 뭔가 나랑은 삶의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다가가지 못했던 거 같다. 그렇다고 대학교가 내가 원하던 과가 아니었기에 흥미도 떨어졌었고 인간관계도 말짱 꽝이었던 어느 날 학교 옥상이 열려 있다는 걸 알고 올라간 적이 있었다.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 마침 벽돌이 몇 개 쌓여 있는 곳이 있었고 내려 갈려고 했던 순간. 나는 용기가 없었고 그냥 내려왔고 다음 달 군대에 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20살까지 인생에 대한 도망자이자 방관자로 살아왔다. 난 실업계로 가고 싶었지만 엄마와 싸우고 결국 인문계로 갔지만 사실상 공부는 뒷바라지고 친구들과 노는 것에 더 신경 썼던 10대.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친구 잘 사귀는 게 중요하다고. 내가 만약 학창 시절 때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을 만났다면 나도 뭔가 의욕적으로 공부해서 인정받는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점. 사람은 결국 끼리끼리 모인다. 선한 이미지와 이에 맞는 성적이라면 알아서 그 사람 주변에 모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성을 만들어 서로를 그저 위로하고 상처 주지 않는 그런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좋은 형들 만나서 나는 22살이 돼서야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너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스스로 치열하게 살아야 그나마 보상을 받을 거라고 말했던 형들. 아니 사실 난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려가지만을 않길 바랄 뿐이다. 현상 유지하는 것도 인간한테는 힘들다. 그것이 내부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외부적 문제일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내일을 살아가는 가치는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살아가고 누군가는 자아실현을 위해 살아가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인생을 끊임 없이 나아가려면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안되는 거 알지만 로또 사는 거고, 유명한 작가가 집필하는 드라마를 기다리고, 상상력과 흥미로움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
보통 자살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깊은 우울증, 인간관계 단절 등이 주요 원인이다. 나는 이 자살 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을 드디어 해냈고 나는 그저 자유를 찾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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