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학생일 줄 알았던 나는 정글의 늪에서 방황하다가 어느덧 스물아홉 김대희가 되었다. 코로나로 올해는 무언가 하기 어려운 한 해를 맞이했고 비말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생각해보면 올해는 참으로 불운으로 가득했다.
1월에 연애를 했다가 2월에 헤어졌고
2월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저혈당으로 갑자기 혈류가 정지하고 쓰러져서 내 생에 최초로 응급실을 갔었다.
3월부터는 코로나 대 확산으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으며 취업의 문틈이 점점 좁아져갔다.
축구도 일시 중단, 애니메이션도 일시 중단. 약 3개월 동안 모든 것이 올 스톱되었다.
치열한 티켓팅하고 갈 준비하고 있었던 예정되었던 콘서트나 한강 벚꽃 축제 및 야외 행사들이 계속 취소되면서 나의 기분은 점점 우울해져 갔다.
희한하게도 10년 전 열아홉 살의 김대희도 마찬가지로 큰 스트레스로 삶을 살아왔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3월 입학식을 기점으로 수능에 대한 스트레스, 끊임없는 선생님들의 공부 압박, 야자 시간 피로로 인해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열아홉 살의 아홉수를 겪게 되었다.
6월 모의고사 9월 모의고사 고사를 봐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매일 불안에 시달리며 살았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가 어떤 대학교를 가야 할지 어느 과에 가야 할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대학교에 보내기 급급해서 성적 맞춰서 알아서 가라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성적에 맞춰서 수시전형으로 대학 타이틀을 위해 원하지 않는 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스물아홉이 되면서 어른들이 말하는 아홉수라는 것에 대해서 20대 중반까지는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였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바로 아홉수 인생을 살고 있던 것이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다. 9에서 0으로 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더 전으로 가서 아홉 살의 김대희를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왕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학교와 점점 멀어지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들에게는 좋은 씹을 안줏거리가 필요했던 거 같다. 지금과 달리 키도 작고 왜소했던 아이. 키순 번호 1번을 놓친 적이 없었다. 가진 자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매일매일 처맞고 다녔다. 그 당시 너무 많이 처맞고 다녀서 나는 원래 머리가 좋았으나 뇌 손상이 와서 지금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상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스물아홉으로 돌아와 현재 이러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 얼른 백신이 완성되어서 마스크 없이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고 재채기해도 눈치 보이지 않고 행사들이 취소되지 않고 노래방을 갈 수 있고 호프집과 포장마차를 거리낌 없이 갈 수 있는 행복한 서른 살을 맞이 했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