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추억

난 그런 거 없는데

by Dㅠ

주말인데 집에만 있기도 뭐하고 해서 오래간만에 식사하며 얼굴도 볼 겸 친구와 만나기 위해 전화해봤다.

안 받는다. 무슨 일이 있나 했는데 한 시간 뒤 카톡이 울렸다.

"나 운전 중이라 못 받아"

"어디 가는 중?"

"아빠랑 인천 여행 가기로 해서 ㅎㅎ"

"그렇구나 잘 놀다 와"


가끔씩 주말에 연락했는데 아빠와 어디 여행에 간다고 나와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신기하다.

나는 아빠와의 추억이 없다. 내 아빠는 오직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가부장적이기도 하고 완고한 사람. 평일 끝나고 주말에 누나나 나와 놀아줄 생각도 했을 법도 한데 말이다. 그래서 혼자 노는 아빠보다는 누나와 나랑 같이 노는 엄마와의 추억이 더 많다. 아빠는 오로지 시골에서 공부만 했는지 아싸 경향이 높은 거 같다.

급식 시절엔 주말에 놀아달라고 하기도 전에 아빠는 이미 눈을 뜨고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 가는지 몰랐었는데 집안 구석에 경마 잡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가 경마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아빠는 우리 가족보다 도박하는 게 더 중요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중에는 우리 가족들을 끌고 와서 배팅하는 거 도와 달라고 하는 말에 기가 막혔다. '이래서 도박이 무서운 거구나' '나는 절대로 절대로 이런 거에 빠져서 가족들을 등한시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다 아빠는 나이가 찼고 일자리가 없어서 내가 고2 때 시골로 귀농했다.

우리 가족들은 아빠가 시골로 가면 더 이상 경마를 안 하겠지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 아빠가 인터넷 하는 방법을 알아서 온라인 배팅하고 있는 모습을 친척들로부터 듣고 깜짝 놀랐다. 농사는 농사대로 말아먹고, 그나마 어떻게든 번 돈 늘리거나 저축할 생각을 해도 모자랄 판에 도박으로 날려 먹다니...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내 아빠는 진심으로 한심하다.

필요할 때만 전화하는 아빠. 그래도 아빠라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가족들한테 돈이라도 좀 보내주면서 힘들어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 라고 한마디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그런 건 없고 우리 가족이 돈 보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쳐야 그제야 돈 보내는 사람이다. 진짜 짜증 난다. 5년 전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한테 이혼 안 하고 뭐 하고 있냐고 말할 때도 있는데 "저 사람이랑 이혼해봤자 위자료 얼마 못 받는다" 고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니 더 슬퍼진다.

엄마와 아빠 반반이 둘 다 있어야 진짜 부부지. 안 만난 지도 거의 10년이 다되어서 사실상 이혼한 거 라도 봐도 무방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아무도 우리 가족도 친척들도 아무도 시골에 가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 아빠는 고독한 벌을 받고 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빠를 용서 안 할 생각이다. 그럴 계획도 추호도 없고. 내가 만약 아빠였다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사실 우리 가족 정말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못해 미안해" 한마디 하는 게 마음 여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아빠의 진심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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