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4명의 성인들은 그들이 태어났던 고대시대부터 4차 산업혁명으로 진입하려 하는 현대 시대까지 수많은 인간들에게 깨우침과 가르침을 준 사람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도 위대한 스승이라 불리고 있다.
간략하게 그들의 업적을 말해보자면, 공자는 유교의 창시자이며 동아시아적 인문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인(仁)을 최초로 제시했다. 조건 없이 남을 챙기고 아끼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으며,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를 강조했다. 석가모니는 불교의 창시자이며 최초로 해탈과 열반을 한 성인이다. 사람은 왜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며, 이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제자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인간은 남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깨우쳐야 함을 강조했다. 예수는 기독교의 상징이자, 삼위일체인 하느님으로 여겨진다. 예수는 메시아라는 구세주의 역할을 하며, 나를 희생해서 너희들(인간)의 죄를 씻어주겠다고 했다. 그의 숭고한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다. 소크라테스는 위의 세 사람처럼 종교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양철학의 시조로서 그의 제자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너 자신을 알라", "검토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 등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통해 무지함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을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철학자인 그는 특이하게도 책이나 일기를 쓰지 않아서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 등이 남긴 저술을 통해서만이 그의 삶과 사상을 알 수 있다.
고대의 지구는 매우 혼돈의 시기였다. 우렁찬 괴성을 지르는 공룡이 살고 있던 시절이 있었고, 대 한파의 추위가 있었으며, 끓어오르는 용암들은 화산으로 분출되었고, 판게아 상태였던 하나의 대륙은 다섯 개의 대륙으로 갈라지는 등 사건사고가 잦았다. 30만 년 전, 인간이 최초로 지구에서 생활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지구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현대 지구의 인간들처럼 내 몸을 외부로부터 보호해주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으며, 맛있는 육즙 가득한 소고기를 먹을 수 있지 않았고, 차가운 칼바람과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안락한 집은 없었다. 고대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은 가장 큰 목표이자 삶을 유지하고 이어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계속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추위를 버티기 위해서는 따뜻한 옷을 만들어야 했고, 나뭇잎이나 풀들을 엮어 나체의 몸을 가려 체온을 유지했다. 숲에서 빨갛게 익은 버섯을 따먹는다. 그런데 먹었던 사람이 의식을 잃고 죽었다. 나머지 생존자들은 "저 버섯은 먹으면 안 된다" 생각한다. 긴 나무 위에 있는 열매를 따먹기 위해 긴 막대기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열매를 따서 먹는다. 진흙, 나무, 풀 등을 섞어 움막집을 짓고 외부에서 채집해 온 음식들을 가져와서 개인 사유화 및 부족들과 나눠 먹는다.
이렇게 인간은 다른 일반적인 동물들과 다르게 목표 달성과 생존을 위해 손을 발달시켰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며, 인간의 뇌는 점점 커져갔다. 예를 들면 조류가 생태계나 환경변화에 따라 다리를 길게 또는 짧게, 날개를 쓰거나 쓰지 않게 진화하듯이 인간들의 형태도 점진적으로 진화했다. 복슬복슬 털이 가득한 원숭이 같았던 최초의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지구 환경이 점차 따뜻해지고 의류를 만들게 되며 털의 체온 유지가 덜 중요해졌다. 그로 인해 인류의 털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 결과, 조상보다 털이 짧아진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까지 진화하게 되었다.
고대 인류는 말은 있었지만 글자는 없었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지식 전달이 가능한 글자를 만들어 멀리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소식을 전달할 수 있고, 지식인이 백 마디 하는 것보다 한 권을 책을 제작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지식 전수를 하게 되는 일이 가능해졌다.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3천 년 전의 메소포타미아인이 사용했던 쐐기 문자라고 한다)
생존해야 했기에 생각을 해야 했다. 호기심이 곧 인류를 지구의 주인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후대의 인간들이 지식을 얻고 생존하기를 바랐다. 이러한 사유로 철학, 과학 등 학문이 생기고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동물이나 사물 등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책으로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해부학 및 정약용의 자산어보 등이 대표적)
현재로 돌아와서 현대인들은 똑똑한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면 NO라고 말하겠다. "아니, 앞에서 고대인들이 지식을 책으로 남겨 놨으니 읽으면 똑똑 해질 거고 뇌도 커졌는데?라고 반박할 수 있겠다. 나는 인간이 개인화되고 편해졌기 때문이라고 반론하겠다. 인류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농경사회를 지나, 기계화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산업 혁명을 지나, 개인 컴퓨터 보급 및 인터넷이 발전된 정보화 혁명을 거쳐, AI 기술 및 로봇이 상용화되는 4차 산업 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람은 편해질수록 생각할 이유가 없어진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계산하려면 주판이나 수기로 일일이 다 계산했었어야 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친구를 만나려면 직접 친구 집에 가거나 집전화로 전화했었어야 했다. 문자 서비스 및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에는 편지지에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어서 상대방에게 주거나 고이 접어 우체통에 넣던 시절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 식사하며 TV를 봤다.
지금은 아르바이트생과 대화하지 않고, 키오스크 판매기에서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신체를 사용해야 하는 달리기나 자전거보다는 전동 킥보드를 사용하여 편안하게 이동한다. 카카오톡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대화하고 심지어 고백도 카카오톡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튜브는 맞춤 알고리즘을 제공하여 고객에게 검색을 요구하기보다는 바로 맞춤 영상을 보여줘서 생각의 힘을 제거한다.
인간이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곧 인류를 해치는 원인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고대 성인들도 이렇게 살라고 후대인들에게 지식 전수하고 가르침을 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량이 적은 것도 원인이 되겠다. 한국의 독서량 세계 166위) 개인적인 생각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간이 모든 동물을 제치고 지구의 왕이 된 이후, 그 어떠한 다른 종의 동물로부터 1등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다. 견제하는 세력이 없기 때문에 나태하고 부패한다. 만약 인간보다 더 지적이고 신체가 우월한 동물이 인간을 지배하려고 먹이 사슬에 도전장을 내밀 때 인간은 정신 차리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까 싶다. 흔히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말하는데 스마트폰 보급화 이후로 그 이야기는 점차 가속화되는 게 느껴진다. 트위터나 텔레그램 같은 음지에서 범죄 작당모의한다거나 근거 없는 인신공격을 난사하는 그들끼리 노는 끼리끼리 문화는 결국 스스로 재앙을 부를 뿐이다. 현대인이 똑똑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각하고 반성하는 사람만이 스마트 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