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햇살 아래로 쏟아지는 소나기
그곳에 내가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활짝 기지개를 켠다.
핸드폰 알람 소리가 우렁찬 엄마의 잔소리처럼 내 방 안에 울려 퍼진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5년째. 여전히 이 알람 소리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끄러운 알람을 끈다. 오늘은 면접을 보는 날이다. OO기업이라는 한국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 500:1이라는 지옥의 경쟁률을 뚫고, 운 좋게도 1차 서류 전형에서 합격통보 메일을 받았다. 2차 면접 전형이 바로 오늘이다. 시계를 보니 7시 40분. 이불을 접고, 잠옷을 훌러덩 침대 위에서 벗는다. 욕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며 눈곱이 가득한 눈을 물로 씻어내며 게슴츠레 눈을 활짝 떠본다. 지성 피부라서 머리와 피부가 잠자고 일어나면 매일 기름이 가득 차 있다. 산유국 그 자체. 일주일 전에 산 지성용 샴푸를 사용하여 머리를 박박 감는다. 린스에 트리트먼트까지 사용해서 윤기 나는 찰랑찰랑 머리카락을 만들어준다. 지성용 클렌징 폼을 바르고 깨끗하게 세안한다. 다 씻고 나와보니 8시. 면접은 10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아직 여유롭다. 뉴스와 날씨를 알아보기 위해 방구석에 있던 TV를 켜고 속옷을 갈아입는다. "아침 헤드라인 뉴스" "청년 실업률 역대 최고치.. 45만 명 기록." "오늘 날씨.. 대체적으로 맑음이나 소나기 가능성 있음... 우산 챙기세요." 등이 눈에 띄었다.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바싹 말린다. 핸드폰에서 합격통보 메일을 누른다. 기업에서 요청한 면접복장 및 규정을 보면서 꼼꼼히 확인해본다. 검은 정장, 긴 머리는 머리망 요망, 검은 구두가 기업에서 원하는 복장이었다. 리스트를 체크하고 하나하나 맞춰본다. 드라이클리닝이 완료된 깔끔한 검은 정장을 입는다. 신발장에 있던 새 구두를 꺼내 놓는다. 검은 서류 가방을 열어 필수 서류를 파일함에 집어넣고 닫는다. 뉴스를 들으며 준비를 다 마치니 어느덧 8시 50분. 집과 면접 장소는 1시간 거리. 구둣주걱으로 구두를 바르게 신고, 현관문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평소에 그렇게 빨리 오던 10번 마을버스는 오늘따라 유난히 오지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른다. 마을버스를 타면 편안하게 앉아서 종점인 신림역으로 도착하기에 좋다. 근데 너무 오래 걸린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도착했을 텐데. 3분만 더 기다리고 안 오면 가야지 했는데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1분 만에 온 마을버스가 구세주 같았다. 얼른 타고 편히 앉아서 신림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은 다행히도 개찰구를 통과하고,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타고 핸드폰 시계를 보니 9시 10분. 아직 2호선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앉지는 못했다. 회사 주변 장소인 을지로 3가 역까지 어플로 검색해보니 약 34분으로 나온다. 서서 있다가 신도림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긴 자리 구석에 자리가 생겨 앉았다. 그렇게 편히 쭉 앉아서 유튜브를 보다가 어느새 을지로 3가에 도착해서 내렸다. 개찰구를 통과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왠 맑은 하늘에 날벼락. 1번 출구를 나왔는데 맑은 하늘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회사는 1번 출구로 나와서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류 가방을 펴봤지만 역시나 우산은 없었다. 아침 뉴스가 뇌리에 스친다. " 오늘 날씨.. 대체적으로 맑음이나 소나기 가능성 있음..." 나는 기상청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이건 당연히 거짓말이겠지 하고 흘려 들었다. 기상청의 오보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은 맑은 날씨라고 하더니 폭설이 내리지 않나, 하루 종일 맑음이라 해놓고 장대비가 쏟아지질 않나. 여러 불확실한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기상청을 안 믿었는데 아뿔싸. 오늘은 믿었어야 했던 날이었다. 젠장.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옆에 나와 같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장우산을 펼치며 가려고 한다. 붙잡는다. 저기.. 혹시 OO기업 면접 보러 가시는 분인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네, 근데 왜 그러시죠?" 제가 우산을 안 가져와서 그런데 같이 쓸 수 있을까 해서요.. "같이 쓰면 제가 젖어서 그건 좀 곤란해요. 죄송합니다" 하고 슉 하고 사라진 그 사람. 으.. 우산 안 가져온 내 잘못도 있지만 한 번에 안되는구나... 쩝. 밑 계단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올라온다. 올라오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우산이 하나밖에 없어서" "단 우산이라서 안됩니다" "날씨 뉴스를 안 보나요? 나참" 등 여러 번 퇴짜를 맞는다. 시간은 점점 촉박해진다. 계단에서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저 정장 남자에게 최후의 요청해보고 안되면 뛰어가야겠다는 임기응변을 발휘해볼 생각이다. 마지막인 만큼 비굴하더라도 최대한 억울해하는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며 물어본다. OO기업 면접 보러 가시는 분이죠?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우산을 안 가져와서 그런데 우산 같이 쓸 수 있을까요? 나의 진심이 통했을까. "아 네 그러세요 같이 가시죠" 신이시어 감사합니다! 속으로 외쳤다. 그의 장우산과 함께 회사로 같이 갔다. 은인의 옆에서 그냥 가기에는 적적하여 면접 준비는 잘 했는지, 회사 합격하면 뭐할건지 등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는 다 대답해주었다.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말해주는 그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10분을 걸으니 어느 센가 회사 앞에 도착했다. 우산을 접은 그의 어깨가 많이 젖었다는 것을 알았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함을 표하고 싶은데 핸드폰 번호 알려주시겠어요? " 아 넵 제 번호는요 000-0000-0000입니다" 나는 번호를 받고, 나와 그는 면접장이 다른 층이라는 것을 알았고, 각자의 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