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세요?

TMI (Too much information)

by Dㅠ

본래 영미권에서 TMI의 뜻은 어떤 사람이 부정적이고 불쾌한 사항을 쓸데없이 들려주면 TMI라고 말한다. ("나 화장실 갔다 올게"라고 말하면 될 것을 "나 큰 똥 싸고 올게!" 같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청자가 불편하게 들을 수 있는 식의 대화법)

‌한국에서는 2017년 하반기,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에 TMI가 퍼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퍼진 계기는 "정치인들의 사소하면서도 딱히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 이 짤방화 되어 인터넷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생일은 12월 19일 본인 생일에 결혼했는데 공교롭게 그 날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정보, 홍준표는 개그맨 공채시험을 응시했다가 탈락했다 같은 이야기) 이렇게 한국에서 TMI는 본래의 뜻을 벗어난 콩글리시가 되어 설명충, 안물 안궁, 누물보, 투머치 토커 등을 표현하는 의미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하루에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현대인들. 그 속에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정보 과부하의 시대. 이런 와중에 누군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를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나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쓸데없는 정보 때문에 이를 방해받는 행위를 싫어한다. TMI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일종의 문화 놀이로 활용한다. 한때 SNS에서 #나에_대한_쓸데없는_정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타인이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자기만의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콘셉트의 게시물이 줄을 이었다. "생선 뼈 바르기를 좋아해서 남이 생선구이를 주문하면 발라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산 옷을 대학교 3학년인 지금도 입고 있다"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TMI를 읽으면서 나와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나 혼자 친해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앞에서는 부정적으로 언급했지만 사실 한국의 TMI는 인간의 영역에 자리 잡은 일상적인 화법이다. 사람들과 대화거리가 없을 때, 보통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마련이다.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 가족과 있었던 이야기, 여자 친구와 있었던 이야기 등 일상적이고 소소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 화자의 입장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싫기 때문에 얘기하는 건데, 청자는 '내가 대체 이걸 왜 들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는지 대화 주제를 바꾼다. 둘 다 틀린 의견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둘 다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과 배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화자 입장에서는 흔히 말하는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며 청자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는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넣으면서 너무 자세한 상황 묘사와 욕과 부정적인 표현을 너무 많이 넣으면 듣는 사람도 진이 빠지기 마련. 청자 귀에서 피가 날지도 모른다. 듣는 사람도 하나의 존중받을 인간이며 남의 집의 귀한 자식이다. 청자 입장에서는 '하 XX, 이 꼰대 XX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이 많아!'라는 생각으로 화자의 대화법이나 대화 주제를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는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들어주는 게 낫다. '이 사람은 나와 친해지고 싶구나' '이 사람은 외롭구나'라고 생각하고 듣자. 대화 중간에 가끔씩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렇구나~라고 말 한마디 해주면 케바케지만 화자도 청자가 영혼 없이 말한다고 해도 '내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를 인식하기 때문에 화자도 대놓고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내 엄마는 정말 TMI의 끝판왕.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 많은 사람으로 TOP3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같이 TV 볼 때도 입을 쉬지 않고 드라마의 악녀와 계모를 욕하며, 어제 했던 이야기, 일주일 전에 했던 이야기, 1년 전에 했던 이야기, 5년 전에 했던 이야기, 10년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 직장에 돌아와서 나는 알지도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는 직장 상사와 동료에 관한 이야기를 저녁식사할 때 무조건 한다. 처음에는 이런 엄마의 대화법이 싫었다. 그래서 참다 참다가 "제발 좀 쓸데없는 얘기 나한테 하지 말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었다. 엄마도 나의 이런 반응이 처음이었는지 미안하다며 알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음날, 여전히 똑같이 저녁식사 시간에 직장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포기했다. 엄마는 전혀 바뀔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았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빠르게 포기하는 게 낫다. 그 이후 저녁식사 시간에 '응' '네'만 말하며 고개만 끄덕인다. 그렇게 하니 엄마도 기분 나쁘지 않고, 나도 기분 나쁘지 않고 편안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으니 오히려 좋다고 본다.


아참, 독자들과 친해지기 위해 내 TMI를 하자면 밀크시슬, 루테인, 프리바이오틱스 영양제를 매일 챙겨 먹는 건강기능식품에 관심 많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보다는 개똥철학이라도 있는 사람이 더 좋고, 감성적인 사람보다는 이성적인 사람이 더 좋고, 미용과 화장에 관심 있고, 요즘 아이돌 노래보다는 가사의 깊이가 있는 8090 노래를 더 좋아하고, 스티븐 킹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좋아하고, 마블 캐릭터 중에 아이언맨을 가장 좋아하고, 좋아하는 만화는 강철의 연금술사이고, 18만 7천 원 주고 산 갤럭시 버즈 프로가 내 보물 1호이며, 내 방에는 25권의 책이 책장에 꽂아져 있고, 최근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미움받을 용기이며, 인생 드라마는 동백꽃필 무렵, 괜찮아 사랑이야, 노다메 칸타빌레, 신사의 품격이며, 슈퍼 전대 시리즈를 좋아하고, 지금 가장 즐겁게 하고 있는 게임은 용과 같이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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