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갖는 법
오랜만에 베이킹을 해볼까하다가 오븐에 넣을 납작한 시트팬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시원하게 여러개를 굽고 쿠키도 구울 수 있을것 같고.. 행복 회로를 돌리다가 어느새 아마존을 검색하고 있다. 엄청 자주 쓰는 것도 아닌데 사야되나? 주문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가격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크기별로 2-3개씩 묶어서 사야되고, 베이킹은 재미있지만 먹을 입은 하나요. 먹는대로 차곡차곡 쌓이는 체질인지라 다시 안사야되는 이유를 굳이 찾아내며 고민한다. '바이나띵에 물어보고 없으면 넘어가야지'하고 그룹 페이지에 들어가 WISH 말머리를 달아 글을 짧게 올렸다. "집에 굴러다니는 시트팬 있으면 저에게 좀 주실분?"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5분 거리에 사는 이웃이 댓글을 남겨주었다. "문 앞에 내놓을테니 가져가요"
yay!! 고민 끗- 베이킹 시작 :)
베이킹 시트로 당분간 먹을 크로와상을 아침으로 정해본다- (룰루랄라)새 제품을 꼭 써야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고개를 들어 바이나띵에게 물어보라. 물건 소비도 줄이고 환경에도 보탬이 되고 이웃과 나누며 '이웃의 정'을 느낄 수도 있다며 예찬론을 늘어놓게 될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물어볼 수도 있고, 반대로 더 이상 안쓰게 된 것을 먼저 나눔할 수도 있다. 필요한 사람 있나요? 라고 GIFT 말머리를 달아서 올리면 된다.
이 자발적이고 선순환적인 그룹은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직관적인 이름인 Buy Nothing 그룹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근마켓의 무료버전이랄까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물건을 다시 쓰고 나눠쓰면서 서로에게 유익도 되는 미국판 아나바다(옛날 사람 인증ㅎㅎ), 지역 선물 경제(local gift economy network)라고 할 수 있겠다.
Buy Nothing은 지금은 전세계에 여러 그룹으로 이루게 되어서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페이스북 그룹으로 시작하였다가 몇년 전부터는 앱을 출시하여 자체적인 플랫폼을 구축했다고는 하는데 나는 여전히 페이스북 그룹으로 하고 있다. (나도 앱을 시도해보기는 했지만 갈아타지는 않고있다)
https://buynothingproject.org/
Spending less
뭐니뭐니 해도 사지 않으면서 (당연히) 돈, 물자를 덜 쓰게 되는 것이 일차적인 유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기 전에 일단 이 커뮤니티에 물어본다. ask/wish의 글을 올려서 어떤 물건이 왜 필요한지 올리고, 보통은 집앞에서 만나거나 현관에 두고 알아서 가져가게 한다.
최근에는 이사 준비하면서 뽁뽁이라고도 불리는 버블랩이랑 무빙 박스를 얻기도 했다. 포장 이사를 많이 하지 않기도 하고, 몇 시간 사용하고 버리기에 비용이나 환경에 아깝기도 한데 이런 경우에 바이나띵이 톡톡한역할을 해준다. 물건을 재사용하고 새로 구입하는 것을 나중으로 늦추거나 줄이게 되면서 일차적으로는 발품을 팔고 구입을 하려고 할 때에 드는 시간이나 돈도 아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폐기물의 양도 줄일 수 있으니 환경에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갖을 수도 있다.
Living generously
후하게 받으면서 나도 후해진다. 소소한 것도 괜찮은가 싶은데, 아이 생일 파티 후에 너무 많이 남은 컵케익이나 주문이 잘 못 오게된 우유 같은 것도 이웃과 나눌 수 있다. 말 그대로 집 가까운 이웃이니까 부담없이 ‘이건 어때?’ 물어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누가 얼마나 주고받았는지 확인하지도 요청하지도 않고, 많이 가져간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또 나눔을 할 때에도 가격이나 브랜드를 강조해서 올리지 생색이 없다. 가치를 보고 소위 비싸보이는 것을 내가 공짜로 얻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필요’에 따라서 빌려주고 나눠쓰는 개념에 가깝다.
나 역시도 펠로톤 장비나 레코드 플레이어 등을 갖게되었는데, 이후에 내가 생각보다 잘 쓰지 않게 되었을 때에는 또 regifting 다시 이웃에게 선물해서 더 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보내기도 했다.
물론 어디에나 악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되팔거나 하는 것은 윤리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하지 않도록 하고, 나눔을 받았지만 안쓰게 된 경우에는 다시 이웃과 나누는 Regift를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역시 강제성은 없다) 특정 물건에 인기가 많을 때에는 픽업 시간을 맞추기 편한 사람으로 정하거나, 랜덤하게 뽑는 경우도 있고 댓글을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줘도 된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Expressing Gratitude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대가와 보상을 바라지 않는 친절을 베풀면서 (거창하지만) 금이 간 인류애를 조금은 회복할 수 있기도 하다. 필요한 것보다 많을 때에 혹시 필요한 누가 있나 살피고, 주는 기쁨과 받는 친절함을 나름 순수하게 주고받는다는 것에서 이 커뮤니티를 애정하게 되었다.
자발성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규칙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자원봉사로 몇몇 관리자도 일하고 있다. 중복해서 여러 그룹에 가입하지 않도록 확인하고, 개입이 필요할 때에 도움을 준다.
소소한 규칙으로는 평소에는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도록 하고, 서로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 안에서 댓글로 나눔이 성사된 이후에먼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 있다. 서로 책임감을 갖게되고 다수의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약간의 보호가 되지않나싶다. 다른 사람들은 그 물건이 누구에게 가는지 확인할 수 있고, ‘너에게 주고싶으니까 메시지 줘’라는 대댓들이 달리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도 댓글로 줄을 설 수 있는 그런 방식이다.
아주 소소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곁들여진 사연들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간단하게 어떤 물건을 어디에서 가져갈 사람? 하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지만- 사연을 구구절절 쓰기도 한다.
코로나 기간 중에 수염을 길러볼까 해서 발모제(?)를 샀는데 아내가 수염난 자기를 안좋아해서 나눠보려고 한다는 사연도 있었고, 고양이에게 성분 좋다는 간식으로 바꿨는데 까다로운 냥이들이 집사의 성의는 모른다는 사연도 있다. 그냥 스쳐지나가고 이름도 모를 사람들이 조금은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점도 큰 유익이다.
소비의 천국이라고 하는 미국 한가운데에서 조건과 대가없이 자기의 물건과 시간을 나누고 적게 쓰고 다시 쓰는 것에서 서로 감사해하고 격려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과장 조금 보태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이 커뮤니티 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으로도 실천해볼 수 있겠다. 조금은 이웃을 배려하고 나누고 베풀고 감사를 표현하면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