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로 이사 온지 어느덧 5개월차. 이 동네로 이사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다정한 이웃'이다.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더해졌다. 우리 동네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마치 80년대를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로 자녀를 돌보고, 문 앞에 서서 한참이나 안부를 나누며, 서로의 안전을 내 집처럼 살피는 이곳은 정말이지 80년대 한국의 정겨운 골목길을 닮아 있다.
처음 이사왔을 때, 옆집에 사는 Kim은 환영 카드와 함께 집 가꾸는 데 보태라며 Home Depot(건축자재와 생활용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창고형 매장) 기프트 카드를 건네주었다. 우리는 '이웃집에 인사를 하는 건 좀 오지랖인가?' 싶은 생각이었는 데 그 생각이 무색해졌달까. 그 친절과 다정함은 일회성이 아니었다. 집 앞에 커다란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마당을 뒤덮어 고민하던 때에도, Kim이 찾아와서는 "우리집 마당 치우는 김에 같이 치워도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Why Not?" 냉큼 그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인 덕분에 우리는 낙엽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엽서가 배달되고, 또 다른 이웃은 직접 만든 호두 간식을 깜찍하게 넣어주고 갔다. 93년부터 미국에 이민왔던 남편도 "이렇게 친절하고 좋은 이웃들은 처음이야"라고 한다.
최근에는 반대편 옆집과 얼굴을 트고 인연을 맺게 되었다. 펫시팅 앱에서 우리를 발견했다며 혹시 연말 동안 자기 반려동물들을 봐줄 수 있냐며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연말은 털내미들과 함께 북적이며 보냈다.
이번 기회에 평소 궁금했던 몇 가지 수수께끼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현관 보안 카메라에 종종 포착되던 고양이들의 정체가 바로 옆집의 '덤블도어'와 '맥고나걸'이었다는 사실이다. 해리포터의 교수님들 이름을 딴 이 고양이들은 밤마다 동네를 순찰한다고 했다. 주인은 "이 동네 쥐는 이 둘이 다 잡는 것 같다"며 쥐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했다. "덕분에 제가 아직 쥐를 한번도 안마주칠 수 있었던 거네요."
가장 의아했던 건 구글 지도에 표시된 '가족 묘지'였다다. 우리 집 근처에 묘지가 있다니? 아무리 찾아봐도 집들 뿐인데 지도가 업데이트가 안된거려나 했었다. 알고보니 옆집 뒷마당이 바로 그 묘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묘지가 바로 뒤에 있는 집은 어떤가요?"라는 남편의 질문에 옆집 아저씨는 유쾌하게 답했다.
"생각처럼 무섭진 않단다."
아주 오래전 지역 유지가 가까운 곳에 묘지가 없어서 가족 묘역으로 조성한 곳이라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개발될 확률도 낮다고 한다. 아저씨는 탁 트인 공터를 덧붙여서 쓰는 셈이라 오히려 좋다며, 아이들이 어릴 적엔 이 묘지를 가로지르는 지름길 덕분에 학교를 지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재미있는 추억도 들려주었다. 기피할 수도 있는 죽음의 공간이 여유로운 뒷마당이자 아이들의 등굣길이었다니. 생의 활기로 죽음이 공간이 다시 살아나 생기를 얻게 된 것만 같다.
옆집에는 앞서 말한 고양이 교수님들 이외에도 개성 넘치는 강아지는 세마리도 산다. 사람을 따르지만 겁이 많은 비니(Beanie), 자기를 만져주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스노이(Snowy). 천방지축 랭고(Rango).
산책 중에 다른 강아지가 실례를 하면 그걸 낼름 먹어치우려 하질 않나, 뒷마당 보트에 고인 꼬질꼬질한 빗물을 홀짝홀짝 마시기도 한다. 새로 깨끗한 물을 떠줘도 굳이 그 '더러운 물'을 고집하는 녀석을 보며 "으악- 하지마"하는 소리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주인은 마당에 풀어두는 것으로 산책을 대신한다 했지만 우리는 "산책 싫어하는 개는 없다"는 신조로 매일 부지런히 산책을 했다. 낯선 발걸음에 조금 서툴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지만,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걷는 시간은 우리에게도 큰 힐링이 되었다.
옆집 아저씨는 "너희 둘다를 믿으니까.."라는 말을 자주 덧붙였는데, 우리가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믿어주는 것으로 또 기대에 부응하고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5년이고 10년이고 이 동네에 살았던 이웃들은 그렇게 서로를 믿으면서 안전한 동네를 만들어왔던 것 같다. 주인은 혹시 열쇠를 깜빡하면 앞집으로 가거나 Kim네 집으로 가면 여분으로 열쇠가 있으니 문이 잠기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응? 왜 집 열쇠를 동네 사람들이 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거죠? ) 현관 열쇠를 동네사람들이랑 같이 공유한다니! 정말 과거에서 사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2주간 옆집을 들락거리며 강아지들과 산책하고, 보들보들한 털을 만지작거리며 보낸 시간은 그 어떤 여행보다 포근했다. 가족들을 만나려고 서부를 가려던 것이 무산되어 내심 아쉽고 서글픈 마음이 있었는데 약간의 보상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기대하거나 찾지 않았지만 거저 누리게 된 것들- 다정한 이웃, 이유없이 애정을 보여주는 이웃집 동물들, 그리고 서로 믿고 지켜주는 안전한 환경-에 마음이 보듬어졌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계시나요? 가끔은 먼저 가벼운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예상치 못한 따뜻한 인연이 시작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