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해산물로 정했다. 매일 이런저런 새로운 식당을 다녀보고 있는데,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아직까지 해산물을 먹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은 집주인 크리스틴이 추천해준 해산물 식당 Ortigia Fish Bar에 가보기로 했다.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작고 아담한 식당에 들어서자, 씩씩한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구운 생선과 해산물 파스타, 시칠리아식 애피타이저 카포나타 Caponata를 주문했다. (카포나타는 구운 가지와 다양한 야채를 잘게 썰어 토마토 소스에 졸인 차가운 애피타이저로 시칠리아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미국인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시칠리아 동쪽 해안 도시를 여행 중인 듯 지금까지 돌아본 곳들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의 말이 내 귀를 사로잡았다.
“시칠리아에는 타오르미나도 그렇고, 아름다운 도시들이 많지만, 여기 시라쿠사는 뭔가 좀 다른 매력이 있어. 타오르미나가 아름다운 경치를 관광하고 싶은 곳이라면, 여기는 한 한달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야. 여기 온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하지만 말이야. 그냥 골목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변에 앉아서 햇볕을 쬐고, 이런 평범한 일을 한달쯤 매일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조금만 더 사교적이었다면, 당장 끼어들어서 “완전 공감해요! 저도 몇 년 전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똑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저희들은 여기에 한달 살러왔어요!”하고 주책스럽게 말을 걸 뻔했다.
그들의 대화가 유독 반가웠던 이유는 그녀의 감상이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라쿠사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를 찾는 서양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체팔루나 타오르미나로 몰리고, 이탈리아 관광객들은 수도인 팔레르모와 역사적 공업 도시인 카타니아를 먼저 찾는다.
시라쿠사가 가장 잘 알려진 건 고대 그리스인의 거점도시로 고대 그리스 유물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예를 들면, 그리스 원형극장)과 고대 그리스 수학자 이르키메데스가 태어난 곳이라는 점 정도이다. 시칠리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도 없고, 가장 역사적인 곳이라고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도시는, 그래서 여행객들의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나버린다.
하지만 막상 여기에 오게 되면 사람들은 여행자의 카테고리에는 잡히지 않았던 이 도시의 매력을 느끼고, 다시 오고 싶다고, 그리고 그때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도시의 무엇이 사람들에게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걸까? 친절하고 여유로운 사람들? 관광객들로 뒤덮이지 않아서 ‘진짜 도시’에 사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어딜 가나 맛있는 식당들?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예쁜 해변? 고대 그리스 도시였다는 걸 증명하듯, 길에 차이는 게 고대 그리스 유적인 신기한 체험?
나에게는 ‘편안함’이었다. 3년 전 여름, 시라쿠사에 처음 왔을 때 나흘간 머물렀는데, 낯선 도시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편안함에 원래 하려던 계획- 고고학 박물관, 원형 극장 투어 등-을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걷고, 수영하고, 먹고, 쉬다가 떠났다. 돌아오고 나니 이상하게도 별거 하지 않았던 그 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쉴 수 있었던 그 시간. 별거 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던 시간들. 머물러야 보이는 이 도시의 매력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다. 왜 시라쿠사에 가냐고, 거기엔 뭐가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이 오늘 다른 여행객의 말을 빌어 조금 선명해진 것 같다.
오늘 나는 우리가 발견한 숨겨진 보물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인정받는듯한 느낌에 혼자 조용히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