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에어비앤비에서 사진을 봤을 때, 넓은 거실에 따스한 볕이 들어오는 걸 보고, 여기에 앉아서 책을 읽고, 일을 하며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게다가 ‘먼슬리 디스카운트’로 한달을 머무르면 원래 가격에 30프로 할인을 해준다고 했다.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도착해서 직접 본 집은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넓은 거실과 주방이 함께 있는 공간이 있고, 왼쪽으로 침실이 있다. 이 두 공간 사이에는 작은 복도가 있고 그 끝에 화장실이 있다. 지내보니 이 복도가 양쪽 공간의 소음을 흡수하는 역할을 해서, 서로 다른 생활 패턴을 가진 우리가(나는 아침형 인간이고, 남편은 저녁형 인간이다.)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새벽의 고요한 시간이었다. 보통 6시쯤 일어나서, 조용히 거실로 나와 차를 내리고, 커튼을 걷어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봤다. 하늘하늘한 커튼을 통과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어스름한 붉은빛은 어느 순간 포근하게 따뜻한 색으로 변해서 집 안을 밝게 비추었다. 그러다 보면 고요했던 동네가 서서히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분주한 소리로 채워졌다. 그 시간에 나는 어제 읽다만 책을 마저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일주일에 이틀에서 삼일은 반나절씩 일을 했다.
해가 완전히 뜨고 나면 햇볕이 너무 좋아서, 빨래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거실로 난 창문으로는 이탈리아 집에 흔히 보이는 빨래걸이가 밖으로 나 있었는데, 빨래를 널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볕에 바싹 마른 뽀송뽀송한 빨래를 걷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이탈리아식 빨래 너는 방법을 배웠다. 보통 나는 옷의 가운데를 빨랫줄에 걸쳐 빨래를 너는데, 자세히 보니 다른 집들은 모두 옷의 끝자락만을 빨랫줄에 걸쳐 집게로 고정해서 옷을 널고 있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햇볕이 닿는 면적을 최대치로 해서 잘 말리기 위해서 인 것 같았다. 나도 그 이후로는 동네 사람들을 따라 옷의 끝자락만 고정시켜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밑으로 축 쳐진 빨래가 중력의 힘으로 아래로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는데, 해보니 이탈리아 빨래집게는 고정력이 상당해서 한 번도 빨래가 1층으로 추락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전형적인 서민 아파트로, 겉으로 봐서는 낡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숙소의 내부는 집주인이 최근에 완전히 리모델링을 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던한 느낌이었다. 아파트에는 대략 30-40 가구가 살고 있는데, 사람 사는 냄새나고 정겨운 분위기였다. 저녁이 되면 이웃집에서 저녁을 요리하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고, 아이들은 아파트 앞 광장에서 신나게 축구를 하며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7시가 넘어가면 엄마들이 창문으로 큰소리로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저녁 먹으러 오라고 재촉했다.
매주 일요일이면 집 앞 광장에서는 활기찬 장이 열렸다. 6시부터 장이 서기 시작해서, 7시만 되어도 동네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과일, 야채뿐만 아니라, 온갖 잡동사니가 다 있었다. 그릇, 옷, 가방, 신발, 그리고 1-2유로부터 시작하는 온갖 골동품까지. 나는 여행자인 내가 살 수 없는 빈티지 그릇과 가구들 주변을 서성거리며, 이곳에 집을 빌려서 이런 아름다운 것들로 집안을 채우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한 가지 이탈리아 집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방음이 잘 되지 않아서 이웃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는 점이었다. 로마와 나폴리에 거쳐 세 번째 집에 살고 있는데 모두 그랬다. 윗집은 아침 7시가 되면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을 치고, 엄마가 야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잠잠하다가 또 뛰고 깔깔거리는 소리.
신기한 건, 이 모두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거다. 윗집은 아침에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모두가 외출을 한 듯 정적이 흐르고, 옆집 사람들 역시 저녁 10시면 귀가를 하고, 30분 정도 티비를 보다가 소리가 잦아들고, 정적이 흘렀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탈리아인들은 집에서 거의 생활하지 않고, 밖에서 햇살을 받으며 살아간다.”라고 그들의 삶을 관찰했는데, 그런 걸까. 집은 잠시 머물러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 불과하고, 그들의 대부분의 삶은 밖에 햇살 아래에서 이뤄지는 걸까? 이탈리아에는 나처럼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순이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한달을 지내며 알게 된 것: 이탈리아의 햇볕은 집순이도 나가게 한다.)
벽을 통해 들리는 소리를 통해 서로의 삶의 패턴이 드러나는 곳에서의 이웃들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오랫동안 가난을 경험한 시칠리아 사람들에게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사치에 불과했을까.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이런 공동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한달간의 시간, 많은 것들이 이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집이 우리 일상의 톤 tone을 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자의 숙소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생활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이웃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보고 흉내 내려 한 덕분에, 비록 한달 간이지만 로컬이 되어보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돌아온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곳에서의 생활이 펼쳐진다. 날이 좋은 오후의 햇볕을 즐기고, 유쾌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사람들과 서로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하고, 시끌벅적하게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단순하게 인생을 즐기는 법 배웠다. 책으로 읽고, 현명한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가까이에서 함께 있어서 온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소중한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