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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07. 2022

시칠리아 동네 커피숍에서 일어난 일

아침에 출근하듯 동네 커피숍에 앉아서 늘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 이제 동네 사람들은 낯선 아시아인의 존재에 조금 익숙해진 듯하다.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 짧은 순간의 정적이, 이 도시가 얼마나 내 삶의 지점과 멀리 떨어진 곳인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가게로 들어서면서 “챠오, 안토니오”라고 하는 걸로 보아, 주인아저씨의 이름은 안토니오인 것 같다. 그는 늘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 들어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고, 테이블을 치우고,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그 와중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챠오”하고 힘차게 인사를 하는 것까지(마치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지 않는 건 굉장한 실례인 것처럼).


안토니오는 우리를 보고 옅은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한다. 테이블이 다 차서 앉을자리가 없는 걸 보고는, 그는 한 테이블에 가서는 “이 사람들 앉게 다 마셨으면 좀 일어나보슈” 같은 말을 하고, 사람들이 흔쾌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조금 미안했는데, 자리를 내주었던 사람들이 개의치 않고 서서 수다를 이어가는 걸 보고, 마음이 놓였다.


길을 지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여기로 오는 대부분이 미국, 유럽 관광객인지라 아시아인은 여전히 낯설고 신기한 존재인 것 같다. 하지만 뚫어지듯 쳐다보는 눈빛이 적대적이거나,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신기해하고 재밌어하는 듯한 얼굴이다.


오늘은 재밌는 아줌마 한 명을 만났다. 그녀는 커피숍에 들어서더니, 나를 보고는 대뜸 “재패니즈?” 하고 묻는다(이들에게 대표 아시아인은 일본인이다).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그녀는 반색하며 “두 유 노 이루마?” 라고 묻는다.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피아니스트 이루마” 라는 말을 덧붙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이루마의 팬이라고 했다. 이 의외의 조합에 놀라워하는 나에게,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이루마의 곡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늘어놓았다.


그녀가 우리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어 우리의 대화에 조인하기 시작했다. 아줌마를 통역 삼아, 한 명씩 질문을 했다. 이름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얼마나 머물 것인지, 왜 한 달이나 머무는지 등등. 이들은 관광객들이 거의 없는 이 로컬 커피숍에 매일 아침 등장하는 우리의 정체가 꽤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우리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질문을 하고, 우리의 대답에 ‘아아~’하고 반응하고, 또 우리의 대답을 토대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왠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아쉬웠다. 내가 이탈리아어를 조금만 더 공부해서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사람들이 어떤 표현을 하는지, 어떤 뉘앙스로 말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나 역시 그들에게 궁금한 게 많았는데. 왜 다들 잘 차려입고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지, 아침부터 큰 소리로 열정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동네에서 평생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커피는 왜 이렇게 맛있는지. 커피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황홀한 이런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면, 삶은 좀 더 살만한 것이 되는 것인지.


그랬다면, 대화하기 좋아하고, 호기심 많고, 유쾌한 이들과 나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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