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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03. 2022

시칠리아 한달살기의 시작


첫째 날


시라쿠사에 도착했다. 집주인은 에어비앤비 메세지로 '도착하기 10분 전에 알려주면, 우리 부모님이 건물 입구에서 너희를 만날 거야.'라고 했다. 구글 지도를 보고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한 블록쯤 남았을 때 1층 집 아줌마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혹시 네덜란드에서 온 손님인가요?”라고 물었다. 아닌데요.라고 했더니, “아 내 친구 에어비앤비에 묵을 사람도 오늘 온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어디로 가냐고 묻기에 우리 주소를 보여줬더니, “아, 다 왔어요. 여기 코너를 돌면 바로 입구가 보일 거예요.” 하고, 챠오챠오-하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것이 동네 주민과의 첫 만남.


호스트의 부모님은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우리가 묵을 2층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고, 우리의 이탈리아어는 너무도 미천했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집 곳곳을 소개해주고, 세탁기나 커피머신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최대한 천천히 이탈리어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Capisce? (이해했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Si, si” 알아듣겠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일요일 집 앞 광장에서 열리는 마켓에 꼭 가라는 것. 동네 사람들은 슈퍼 대신 그곳에서 장을 본다고 했다. “맛있는 게 많이 있어요.” 이런 말은 어떤 외국어든지 어쩐지 알아듣게 되어있다.



너무 피곤했지만, 간단하게 동네 구경도 할 겸, 집 근처의 슈퍼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거리가 한산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바삐 걷지 않고, 눈을 마주치면 다들 본 죠르노-하고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한 달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레 마음이 벅차다.


둘째 날


아침 산책을 했다. 집 앞에 있는 바가 너무 좋다. 카푸치노와 코르넷또를 먹으며 동네의 아침 풍경을 구경했다. 6시도 전에 문을 연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던 8시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챠오, 안토니오!”하고 격하게 인사를 하고 시끌벅적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챠오, 뒤에 꼭 이름을 붙이는 게 신기했다.



여기 사람들은 커피와 함께 달콤한 페스츄리를 아침으로 먹는다. 이곳에서 먹는 일이 재밌는 건, 이들의 열정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먹는 일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즐긴다. 내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마음 한구석에 있는 죄책감이나 자기 합리화 (어제 운동했으니까 이거 먹어도 괜찮겠지) 같은 것을 볼 수 없다. 어떤 확신과 몰입이 느껴진다. 그런 기운에 싸여 아침부터 달콤한 코르넷또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면 걷잡을 수 없는 행복감이 몰려온다. 우리는 과감하게 행복해져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셋째 날


오르티지아 Ortigia를 걸었다. 어제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추웠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햇살을 잔뜩 받았다. 어떤 골목에는 한 할머니가 긴 빗자루를 들고 집 앞을 쓸며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 쏠레미오-‘같이 아름답고, 구슬픈 선율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골목에 있던 사람들과 옆집 사람들이 모두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정겨우면서도, 왠지 힘이 나는 장면이었다.



카페를 발견하고 쉬어가기로 했다. 한적한 광장에 파라솔에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나는 아몬드 그라니따 Granita를, 남편은 커피를 시켰다. 그라니따는 시칠리아의 전통적인 여름 디저트로 슬러시와 비슷하다. 물론 시칠리아 사람에게 ‘슬러시 같은 거’라고 말하면 큰일 난다. 에트나 화산 밑에서 나오는 얼음을 갈아서, 더운 여름에 먹었던 것이 시작이라고 하는데, 슬러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아주 곱고 보들보들하게 갈아야만 그라니따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여기가 아니면 절대 먹을 수 없지. 밀라노나 로마에서 보이는 슬러시는 그라니따가 아니야.”라는 말을 시칠리아에서 많이 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이 시원하고 달콤한 그라니따를 이곳 사람들은 아침식사로 많이 먹는다는 점이다. 종종 아이스크림을 아침으로 먹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다 연락해서 말해주고 싶었다. 이곳 시칠리아에서는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피스티치오/레몬/커피 그리니따

앉아서 책을 읽다가, 배가 고파져서 식사 메뉴를 구경했다. 피아디나 Piandina라는 이탈리아식 샌드위치 메뉴가 신기해 보여서 주문해봤다. 또르띠아같은 플랫 브레드에 페스토와 치즈와 토마토, 바질, 넛츠를 넣어 반으로 접은 것이었는데, 겉만 살짝 그릴판에 구워서 겉은 따뜻하고 바싹하고, 안은 샐러드를 먹는 것처럼 신선했다. 빵도 일반 또르띠아보다 조금 더 도톰하고 폭신해서 씹는 맛이 좋았다.



한참을 앉아서 쉬다가, 일어나서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다. 영수증을 받아 들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저렴했다.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커피가 빠져있다. 다시 들어가서 커피값이 빠진 것 같다고 했더니, “아- 그랬나? 그냥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됐어 됐어.” 라며 돈을 내려는 우리를 극구 말렸다. 이상하다. 오늘 아침에도 커피숍에서 5.3유로가 나왔는데, 아저씨는 “5유로만 내요.”하고 6유로를 내민 우리 손에서 5유로 지폐만 가져가더니. 뭐지, 이탈리아에서 우리 시골의 인심이 느껴지는 이 신기한 경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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