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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Aug 29. 2022

여행 가기 전 날, 잠 못 드는 밤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되기 전이다. 어제 10시쯤 잠들었으니 세 시간도 채 못 잔셈이다. 피곤하고 눈꺼풀은 아직 무거운데, 심상치 않은 바람소리와 빗소리에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기어이 잠을 몰아내고 말았다.


이런 날씨에 비행기는 얼마나 흔들릴 거야. 나는 왜 기어코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는 거지. 집 나가면 다 고생인데 왜 그걸 사서 하고 있나.


혼자 가는 거였다면 당장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숙소도 위약금을 감수하고서라도 취소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이성을 찾고 다시 생각하면 비웃을만한 사고의 흐름이지만, 밤의 생각은 늘 극단적이고 진지하고, 비극으로 치닫는다.


잠들지 못하는 여행 전날의 밤에는 주로 이런 생각을 한다.  특별할  없는 우리 침대가 너무도 포근하게 느껴지고, 10년간 업데이트가 안된 인간적인 느낌의 우리 집이 너무도 훌륭한 공간같고,  집을 떠나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가장 멍청한 행동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나에게 익숙한 공간을 벗어난 모든 장소가 위험한  같다.  비수기의 이탈리아를 가려는 거지. 거긴 따뜻한 날도 있겠지만, 비가 오고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오락가락이라는데.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내가 거기 가서 잔뜩 우울하기만 하다가 올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기행>에서 괴테는 이탈리아의 연중 따사로운 날씨와 밝음을 극찬했지만, < 북소리> 하루키는 이탈리아에 대해서   있는 가장 긍정적인 말은 “재밌다" 정도라고 했다.  하나 되는  없고, 사람들은 쓸데없이 여유롭기만 하고, 그래서 모든  불편하다고. 본인에게 거기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말이다.   


가야 할 이유는 흐릿해지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넘쳐난다. 두 시간쯤 진지하게 이 여행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 었는지 생각을 하다가, 더 나아가 내 삶은 왜 이렇게 무모하지를 한탄하다가 겨우 다시 잠에 들었다. 세 시간쯤 더 자고 일어나서, 잠을 설친 멍한 두뇌를 최대한 잘 구슬려가며 짐을 싸고 있다.


여행 가방을 싼다는 건, 미래의 여행지에서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를 예측하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여행지에서 다시 보면 내 짐가방은 늘 필요 없는 것들로만 가득한 것 같다. 이상하게도 늘 그렇다. 혹시 우리는 국경을 넘으면서 조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건 아닐까. 낯선 장소의 기운의 힘을 빌어 나의 새로운 면이 나오면서, 집에서와는 조금 다른 물건과 옷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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