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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Aug 28. 2022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에 한 달간 아파트를 빌렸다

여행의 시작

이상한 여행이었다. 쉬러 떠나는 휴양도 아니고, 어디를 보러 떠나는 관광도 아니었다.


혼란스러웠던 그때를 정리해보자면, 떠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홍콩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다. 몇 달간 남편은 온라인으로 일을 할 수 있었고, 내가 하는 소일거리 역시 홍콩에 있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해진 것은 딱 하나,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있는 작은 도시 ‘시라쿠사 Siracusa’에 작은 아파트 하나를 한 달간 빌렸다. 비수기이기도 했고, 새로 시작하는 에어비앤비라 말도 안되게 싼 가격으로 한 달을 머물 수 있었다.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봄에 떠나서 여름을 보내고 돌아오자, 라는 것만 정해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한 달을 보내고, 이어서 그리스의 섬 크레타에서 3주를 머물렀다. 그다음에는 해외에 흩어져있는 가족들을 만났다. 스웨덴에 있는 시누이 집을 시작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시댁을 들러, 한국에 다녀왔다.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을 했다. 밥을 차려 먹고, 동네 산책을 하고, 생산적인 일을 조금 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수영을 했다.


그 마을에 흐르는 시간 축에 쓱 숨어들 수 있을 때가 있다. 어떤 마을이든 대체로 머문 지 사흘이나 나흘째에 그때가 찾아온다. 그곳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일상을 피부로 이해하고, 자신이 그 안으로 녹아들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시간은 천천히 흘러, 나의 나날이 마을에 녹아들어 간다. 평범한 저녁놀, 비 그친 뒤 젖은 차도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때다.

- 가쿠다 미쓰요의 책 <언제나 여행 중> 가운데.


지난 몇 달간의 시간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때의 일기를 보면 그저 낯선 도시에서의 평범한 하루하루였을 뿐이다. 장을 보고, 집에서보다 훨씬 싼 와인과 치즈에 기뻐하고, 단골이 되고 싶은 커피숍을 찾아 나서고, 분위기 좋은 동네 책방 주인과의 대화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날들.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에 젬병인 내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일이 일기를  것이다. 별거 없는 일기이지만, 써놓은 것이 아까우므로  일기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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