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근본적으로 무언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직감할 때가 있다.
단지 무기력하거나, 싫증이 나는 것처럼 일시적인 문제와는 다른 위기감이 느껴질 때가. 나는 문득 지금 있는 이곳에서 더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홍콩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다. ‘홍콩에서 사는 건 어때?’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love and hate relationship 애증의 관계라고 답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공손한 표현이었고, 사랑이 40 미만, 그 외의 감정이 60으로, 나는 이곳에 살면서도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이 늘 모자랐다.
나에게 홍콩은, 마음이 가난해지기 쉬운 도시였다. 이 도시에는 두 가지 세상이 존재한다. 광둥어를 사용하는 95퍼센트 이상의 로컬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광둥어를 하지 못하는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이 살아가는 세상. 그 두 곳은 실질적인 경계선이 뚜렷하지는 않고, 물론 두 세상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경험할 수 있지만, 10여 년의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나는 그저 쉽고 편리함에 이끌려 작은 외국인 버블의 세상에 머물렀다. 그 삶은 말 그대로 버블 속에 살듯 편했지만, 얕고 ‘사람 사는 맛’ 같은 깊게 우려낸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로컬의 삶이든 외국인의 삶이든 이 두 세계가 공유하는 한 가지는 ‘돈’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중요하지 않은 곳이 어딨느냐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작은 도시가 곧 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보니, 그 모습이 훨씬 더 응집되어 다가온다. 대놓고 돈에 열광하는 세상은 참 신기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월급이 얼마냐”라고 묻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사에게도 “월세 얼마나 내느냐”라고 직접적으로 묻는 홍콩 동료를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이들에게 돈은 부끄러워할 것도, 조심해야 할 문제도 아니다.
돈이 많은 것은 선한 것이고, 돈을 좇는 일이 옳은 길이라고 믿게 되면, 혼란스러운 일이 많아진다. 이 시스템에서는 돈이 되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돈이 안되는 예술영화보다 더 훌륭한 것이 된다. 보호가 필요한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가차 없이 세상의 관심 밖이 된다(예를 들면,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시급보다 낮은 ‘특별최저시급’이고, 그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쉽게 묵살된다). 신문사에서 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아이들에게 만약에 아빠를 선택할 수 있다면 현재 아빠와 홍콩 최고의 재벌인 리카싱 중에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었고, 압도적으로 많은 아이들이 홍콩 최고의 재벌을 선택했다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물론 내가 이 도시에서 좋아한 것들도 많다. 아시아의 국제도시로서 경쟁이 치열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출신이나 인맥이 아니라, 진짜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공평성이 있기도 하고, 홍콩은 오래전부터 외부와 교역을 해왔기 때문에 이방인에 대해서 열려있고,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인도에서 왔던, 네덜란드에서 왔던지 간에 이방인으로서 이곳에 정착하는 일이 쉽다. 그리고 도시의 가운데 바다가 있다는 건, 일상의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일하기 싫을 때 창밖으로 멍하니 바다를 보는 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의 매력도 가난해지는 내 마음의 속도를 줄여주지는 못했다. 나는 마음의 파산을 앞두고, 드디어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하지? 나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주인공처럼 꿈의 도시를 마음에 품고 있지는 않지만, 흐릿하게나마 내가 살고 싶은 도시를 그릴 수는 있었다.
돈보다는 삶에 대한 취향이 중요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잘나고 유능한 사람들보다는 눈이 선한 다정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좋겠다. 빨리 달려가는 사람들보다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멈춰 서서 물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돈이라는 교환개념 너머의 가치를 이해하는 공동체여서, 공원, 벤치, 도서관, 미술관, 독립 영화관, 독립 서점 같은 것들이 활발하게 살아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이번엔 그곳의 언어를 잘 배우고 싶고, 동화될 수 있는 집단이면 좋겠다.
그런 곳은 어디일까? 그건 여행책에서도, TV의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가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다음 정착지를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휴가를 쓸 수 있는 여름과 겨울에 짧게는 몇 주, 길게는 한 달씩 한 곳에서 머물렀다. 우리가 찾아 나섰던 것은 도착지라는 장소이기보다는, 그곳에서의 삶이었다. 우리는 다른 삶을 알아보고 싶었다. 살아보는 여행을 하면서 무엇이 삶을 만족스럽게 하는지, 무엇이 그들을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는 동력이 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면 이 여행의 끝에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현실적으로 그곳으로 이주를 할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우리는 그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 것은 몸으로 부딪히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그런 삶의 태도가 모여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는 거니까.
우리가 머물렀던 곳들 중에서 우리가 ‘우리 여기서 살까?’라고 눈을 반짝이며 서로에게 물었던 곳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그리스의 섬 크레타와 이드라, 태국의 치앙마이, 인도네시아 발리 그리고 터키의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 카쉬. 좀 느리게 살아도 괜찮은 곳. 날씨가 온화하고, 아직 선한 눈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인심’이 있었고, 쉽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먹고 즐기는 지금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고, 타인에게 다정한 태도가 개인적인 성향이 아니라,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은 연결되어있다’라는 느슨한 연대에서 비롯된 공동의 태도였다. 가진 게 많지 않아도 풍요로움을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함께 있다 보면 마음이 부유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여기서 살까,라고 느꼈던 순간들은 그곳의 삶의 방식을 사랑했던 시간들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놓치고 있었던 소박한 삶의 즐거움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내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마음은 비워지고 또 채워지는 것이라,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곳에 머물렀던 시간들로 나는 다시 삶에 희망적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글들은 새로운 삶이 필요해서 그것을 찾아 나서는 모험기이자,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가는 성장기이기도 하다. 이것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답은 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을 잃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그런 이야기이다.
1부: 시칠리아
2부: 그리스 섬
3부: 치앙마이와 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