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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12. 2022

연휴에 읽은 책들

<책갈피의 기분>, <태국 문방구>, <2인조>

 왠지 이번 연휴에는 평소에 읽지 않던 색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었다. 나에게는 읽고 싶은 책들을 리스트로 정리해둔 파일이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읽고 싶어서 만든 리스트인데도 어떤 날에는 이것이 묵직한 숙제처럼 느껴져서 이 리스트에 올라와 있지 않을 책들만 열렬하게 읽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읽은 세 권의 책들이다.


<책갈피의 기분>


작은 출판사에서 1인 10역을 해내는 에디터의 분투기이다. 매거진 B에서 나온 [JOBS: 에디터] 편을 재밌게 읽었는데, 그 책이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멋짐’과 ‘유능함’을 부각했다면, 이 책은 에디터라는 직업을 여과되지 않은 ‘보통의 직장인의 삶’으로 그려내서 더 가깝게 공감할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또 출판업계의 생태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책을 만드는 것은 이다지도 고된 일이다. 출판사는 책장사를 해서 먹고사는 곳이니까,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팔리지 않을 것 같으면 출간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다. 작은 출판사의 한계를 마주하는 순간은. 내용은 정말 훌륭한데, 지금 우리 사회에 꼭 존재해야 하는 가치 있는 콘텐츠인데, 판매력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그런 원고를 만날 때마다 나는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 생각해보니 책을 만드는 것보다 만들지 못하는 이 마음이 나는 더 고되고 고단하다.


자신이 담당하는 작가가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는다고 힘들어하자, 그런 작가를 위로해주고 나오면서, 그녀는 왠지 씁쓸한 마음이 된다.


나도, 글을 쓰고 싶었으니까.

나는 내가 그렇게 살 줄 알았다. 대가들의 문학작품을 필사하고, 문체와 세계관을 고민하고, 사라져선 안 되는 인생의 귀중한 가치들과 나만의 목소리를 단어와 문장에 고스란히 담아내며 살 줄 알았다. 이 와중에 조금 사치스러운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그래, 그게 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꿈을 이루는 대신 다른 이의 꿈을 위해 한없이 소비되어 닳아 없어지는 중이다.

그날 위로가 필요한 건 내 쪽이었을지도.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서 자신만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쓰기로 하면서, 그 과정을 행복해하는 모습에 저절로 박수를 쳐주고 싶어졌다.


공중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정성껏 고른 언어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나를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시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 다들 글을 쓰는 걸까? 그렇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몸 밖으로 내보낼 줄 아는 삶이란, 굳이 책을 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자체로 매우 근사하고 쓸모 있는 게 아닐까.


책의 중간중간에 에디터로서 쓴 업무 메일을 샘플로 보여주는데, 업무상 출판사 쪽에서 실수가 있었던 번역가에게 백번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글이나, 기발하고 이상한 문의를 하는 독자에게 답변을 하는 글도 신선했다. 후루룩 읽혀서 한 자리에서 다 읽으며 연휴의 첫날을 보냈다.  


<태국 문방구>


어떤 사람들은 여행지에 가면 꼭 슈퍼를 둘러보거나, 서점에 가거나, 박물관을 가거나, 술집 Bar에 가는 등의 자신만의 여행지를 즐기는 방식이 있다. 방콕에 살게 된 이 책의 작가에게는 그것이 문방구이다. 문구 용품 덕후인 그녀는 태국 곳곳을 여행할 때 가장 먼저 문방구에 들러, 어떤 문구 용품이 어떻게 진열되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가게를 운영하는지, 그 동네에서 이 문방구는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등을 살펴보고 고뇌하는 일을 즐겁게 해낸다. 문구 용품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동화되어서 문방구의 세계에 빠져볼 수 있었다.


태국에 사는 한국인의 생활기이고 여행기이자, 무언가에 열광하는 덕후로서 집요하게 파고 또 파며 자기 세계를 넓혀가는 이야기였다.


<2인조 :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어떤 책이든 ‘시기적 궁합'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어떤 책을 읽고 좋아하게 되는 일은 그 책이 절대적으로 좋기 때문만은 아니고, 읽는 사람에게 그 시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말하자면 ‘시기적인 궁합'이 맞아떨어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친구를 통해서 이석원의 블로그를 알게 되고, 그 안의 글들이 좋아서 그의 책을 읽으려는 시도를 했었는데, 몇 번이나 읽다가 말았던 기억이 있다. 왠지 모를 차가움이나 건조함이 느껴졌고, 그때는 그 분위기가 별로 끌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좋은 글을 쓴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밀리의 서재를 탐방하다가, 무엇인가에 끌려 이 책을 다시 열었고, 이틀 밤에 걸쳐 꼼꼼히 다 읽었다. 이번에는 그의 어두움이나 무거움도 공감하며,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언니네 이발관 때부터 그를 좋아했는데, 뭔가 시크하고, 자기만의 쪼가 있는 단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이 책에서 연달아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작아지고,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몸까지 아프게 되는데, 그런 그가 어떻게 스스로를 추스려 차근차근 다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그 지난한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읽고 나면 성공한 사람이든, 단단한 사람이든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무너지고, 중요한 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 추스려서 일어나 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또 그가 면밀히 그의 마음을 돌보는 과정을 보면서 - 무엇이 그를 괴롭히고, 어떤 부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무엇이 그를 흔들고, 어떤 때에 확신이 오는지 - 나를 알아가고 내면을 챙기는 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되새기게 된다.

 

그리하여 이십오 년 만에 다시 마음의 치료를 하러 병원에 다녀온 뒤로, 난 나를 구원할 것은 단순히 의사와 약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삶 전반을 돌아보고 고치고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실패는 언제나 힘든거니까. 힘들고 비참하고 눈물 나고 그러는 거니까. 그래도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나는 그리 생각한다고.

언젠가 다시 또 그 인정의 무대에 설 텐데, 그때 가서 결과가 좋지 않아 또 무너진다 한들, 그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겨내는 것이 성숙의 척도인 양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나이가 들수록, 타인이 나를 구원해주길 기다리기보다 나 자신과 둘이서, 다시 말해 스스로 삶을 헤쳐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고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또다른 내가 있는,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 아닌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순간들이 살아 있는 한 계속되기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뭔가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


내 나이쯤 되면 의사로부터 언젠간, 살고 싶으면 밀가루와 설탕을 끊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밀가루와 설탕을 끊으면 살 이유가 없어지는데, 살기 위해서 그것들을 먹으면 안 된다니 이 딜레마를 어쩌면 좋을까.



중요한 건 내 편을 만드는 거지
나를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려 애쓰는 게 아니라는 것.
언제나
오직 나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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