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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14. 2022

양과 늑대의 이야기

언제나 양의 편에 서고 싶다는 용기

2년 전에 출간된 동화책이 있다. 3권에 걸친 <양과 늑대의 이야기> 시리즈이다. 평화롭던 양들의 마을에 늑대 무리가 출몰하고, 양들이 똘똘 뭉쳐 마을을 지키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책에서는 마을을 지키려 맞서 싸운 양들에게 일어난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침내 늑대가 마을을 점령하고 나서 마을을 지키려고 맞서 싸운 양들은 미운털이 박혀 괴롭힘을 당한다. 이에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늑대에게 붙잡히고 만다.



2020년 6월, 홍콩에서 출판된 이 시리즈는 홍콩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상황과 닮아 있다.


영국이 홍콩을 반환한 이후, 홍콩의 자치권을 약속한 중국이 그것을 철회했을 때 (범죄인 인도 법안) 일어난 대규모 시위,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시위는 중단되고, 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수감되는 지금의 상황이 양과 늑대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그 이후, 이 책을 출판한 언어치료사 5명은 선동죄의 명목으로 수감되었는데, 며칠 전 열린 재판에서 그들에게 1년 7개월의 실형이 내려졌다. 판사는 이 동화책이 어린이들에게 중국을 두려움과 증오의 존재로 여기도록 세뇌시키고 있다며, 이 책을 선동물로 보았다.


재판의 마지막 날, 5명의 언어치료사는 5일간 이어진 재판기간 그리고 13개월 동안 감옥에서 보낸 시간 동안의 생각을 직접 공유하고 싶다며 변호사 없이 마지막 변론을 했다.


마틴 루터 킹의 말을 빌려 “시위는 목소리를 잃은 자들의 언어”라며, 이 재판은 이 정권이 가진 ‘역사적 시각’에 대한 판결이라는 말로 최후 변론을 시작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그녀선을 넘은 발언을 했다며 주의를 주었고,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발언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저는 이 동화책을 출판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양의 편에 서고 싶습니다.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좀 더 일찍, 더 많은 책들을 내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재판장을 채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마지막 발언에 눈물을 터트렸다는 기사를 읽으며,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이 믿는 것을 지켜내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 양의 편에 서 있는 아슬아슬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화책 <양과 늑대의 이야기>의 출판은 멈춰졌지만, 현실의 양과 늑대의 이야기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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