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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Mar 14. 2023

홍콩의 힙한 동네, 삼수이포


아마도 최근 몇 년간 홍콩에서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동네를 고르라면, 삼수이포(Sham Shui Po)일거다. 관광객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침사추이에서 지하철 MTR 빨간색 라인을 타고 북쪽으로 다섯 정거장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삼수이포는 홍콩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이자,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삼수이포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새장 아파트' 혹은 관 크기만한 집이라고 해서 '코핀 홈(Coffin Home)'이라고 불리는 주거형태인데, 예를 들면 14평 남짓한 공간에 합판으로 가벽을 나눠서 무려 30명이 함께 살기도 한다(홍콩의 세컨드 웨이브 감독 프룻 챈이 얼마 전 코핀 홈 Coffin Home을 배경으로 사회풍자 호러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랬던 이 동네가 최근 몇 년간 많이 달라졌다. 트렌디한 독립 상점들, 특히 카페와 레스토랑이 하나씩 생겨나면서 힙한 곳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삼수이포라고 하면, 힙한 카페 거리를 떠올린다.


삼수이포의 새장 아파트 Cage Apartment <localiiz.com>


한 가지 재밌는 건 이 변화의 촉매제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점이다. 독립 상점들은 줄어든 매출에 번화가의 렌트를 감당하지 못해서 렌트가 저렴한 곳을 선택하게 되었고, 여행을 못 가게 된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 대한 갈망으로, 기꺼이 낯선 동네를 탐험하기를 원한 것이다. 코로나의 제재가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변화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만 이곳에 20개의 카페가 문을 열었다고 한다.


몇 년 만에 와본 이곳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낡고 허름한 골목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북적이며 활기찬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트렌디한 비건 레스토랑, 마치 일본의 카페를 옮겨온 것 같은 귀여운 일본식 카페, 예술 전시 공간을 겸하고 있는 카페가 보였다. 미니멀리스트 느낌의 모던한 가게와 오래된 노포의 대조가 신선했다. 포르셰를 몰고 와서 카페 투어를 하는 사람들 옆으로, 동네를 돌며 빈 병과 박스를 줍고 있는 허름한 행색의 노인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홍콩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극단의 대비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듯했다.



카페 거리를 벗어나 삼수이포 지하철 역 쪽으로 걷다 보면 전자상가와 노점들이 있는 시장이 나온다. 삼수이포에 오면 늘 가는 두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유명한 라이스롤(창펀) 맛집 Hop Yik Tai(홉익타이)이다.


라이스롤(창펀) ⓒ Hong Kong Tourism Board


라이스롤은 우리나라로 치면 떡볶이 같은 국민 간식인데, 보들보들하게 찐 라이스롤 위에 세 가지 소스(참깨 소스, 간장 그리고 호이신 소스)를 뿌려서 섞어 먹는 음식이다. 보기엔 양념 범벅인 것 같지만, 의외로 간이 세지 않고 적당히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조화를 이루어서 맛있다. 간이 센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케첩도 잘 뿌리지 않는 나인데도, 이곳의 라이스롤은 맛있게 다 먹었다. 언제나 사람들이 많아서 웨이팅이 있고, 테이블에 자리가 나면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해야 하는 곳이지만, 근처에 오면 생각이 나서 들르곤 한다.


https://goo.gl/maps/h34vJB1uaLXcLoaL8


삼수이포 가든힐 ⓒ Hong Kong Tourism Board


그다음에는 먹은 걸 소화시킬 겸, 천천히 걸어서 두 번째 장소인 가든 힐 Garden Hill에 오른다. 삼수이포 지하철 역에서 15분 정도 계단을 올라가면 언덕 위의 작은 도심 공원이 있다. 미니 하이킹처럼 숨이 가쁘게 계단을 오르고 나면, 계단의 끝에 시원한 그늘과 벤치가 있는 평지가 나타난다. 나는 종종 이곳에 와서 탁 트인 뷰를 보면서 멍하니 앉아 고요한 시간을 즐기곤 한다. 홍콩 사람들에게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별로 붐비지 않는다. 데이트하는 커플, 맨손 체조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조잘대며 수다를 떠는 어린 학생들 몇 명이 보일 뿐이다.


사진출처 <Hong Kong Outdoors>


꽤나 가파른 계단이라 더운 여름에는 추천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보는 도시의 뷰는 워터프론트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멋이 있다. 특히 해질녘에 오면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 짧게 홍콩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굳이 여기까지 찾아 올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전형적인 여행 루트를 벗어나서, 홍콩의 숨겨진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할만한 장소이다.


https://goo.gl/maps/AtASfSLz1PitjYp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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