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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Oct 21. 2022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의 일상 - 첫인상


아테네에서 크레타 섬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비행기로는 1시간쯤 걸리고, 페리를 타면 배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8시간에서 10시간쯤 걸린다. 이 페리는 침대가 있는 프라이빗 룸을 갖춘 대형 크루즈여서 멀미 한번 하지 않고 편하게 오버나잇 페리로 여행할 수 있다. 우리는 페리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국내선 특가를 발견하게 되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보통은 100유로 정도인데, 종종 특가로 50퍼센트 할인 티켓이 나오곤 한다)


크레타는 그리스의 섬 중에서 가장 크고, 지중해에서 5번째로 큰 섬이다. 제주도보다 4배 이상으로 큰 섬이니, 어디에 머무느냐를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여러 도시를 알아보다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도시인 하니야 Chania를 발견했다. 우리가 좋아할 만한 도시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테네에서 50분쯤 비행해서 하니야 Chania 공항에 도착했다. 늦은 저녁에 도착할 예정이라 미리 공항 택시를 예약해두었다. 게이트 앞에서 우리 이름이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택시 기사를 만났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늦은 밤인데도 기분 좋게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웰컴! 웰컴 투 크레트!”


그는 공항 입구에서 우리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왔다. 그의 차는 거의 새것으로 보이는 밴이었는데, 안에는 꽤나 큰 스크린이 운전석 옆에 달려있었다.


그는 “자, 그럼 숙소까지 20분쯤 걸릴 테니, 그동안 간단하게 크레타섬 소개를 해줄게요.” 하면서 스크린으로 사진과 동영상이 담긴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미코노스나 산토리니에는 관광객 밖에 없잖아요, 진짜 그리스는 여기에 있거든요.” 그리스의 삶을 경험하기에는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거라고 했다.

Photo by Tom Parker

그는 우리가 머물 하니야는 코즈모폴리턴 도시이면서, 로컬 문화가 활발하게 살아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베이스를 두고 차를 렌트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좋을 거라며, 여러 해변을 소개해주었다. 늦은  피곤에 절어  기대감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알차서 눈이 번쩍 뜨였다. 이때부터 알게 되었다. 크레타 사람들은 지중해의 여유로운 사람들이지만, 관광산업이 그들에게 중요한 수입원이다 보니 관광객을 대하는 일에 굉장히 진지했다. 음식이든, 차량 서비스이든 뭐든 기대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있었다.


해변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그리스 음식 소개로 넘어갔다. 그는 크레타 식당에서 맛없는 음식은 찾기가 힘들 거라며, 맛집을 고르는데 힘들이지 말고 끌리는 곳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으라고 했다. “왜냐면 그리스 사람들은 먹는데 정말 진심이거든요.” 길에서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열에 일곱은 먹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예요,라고 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우리에게 그는 몇 가지 추천음식을 알려주었는데, 예미스타 Gemista (피망 안에 밥과 치즈를 넣고 찐 음식), 돌마데스 Dolmades (포도 잎에 라이스를 넣은 쌈으로 요거트를 곁들여 먹는다), 그리고 달콤한 크림 파이인 부가짜 bougatsa를 먹어보라고 했다.


돌마데스와 부가짜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숙소에 도착했다. 그는 우리 짐까지 다 내려주고는, 좋은 여행 되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에어비앤비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쓰는 집 바로 옆집에 살고 있어서,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나와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전형적인 그리스 가정집 같은 이 숙소는 들어서자마자 아늑하다. 널찍한 베드룸과, 푹신한 소파가 있는 거실, 커피머신과 오렌지 착즙기까지 없는 게 없는 주방이 있다. 그리고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집 안의 가운데 위치한 중정, 아기자기하게 잘 손질된 가든이 보였다.



이번이 세 번째 그리스 여행인데, 호텔처럼 꾸며놓은 숙소보다, 이렇게 원래 쓰던 가정집을 여행객들에 빌려주는 곳들이 좋았다. 정말 친척집에 온 편안한 기분이 든다.


주인아저씨는 넉살 좋아 보이는 풍채가 좋은 남자였다. 피곤할 테니 간단하게 설명하고 가겠다며, 정말 초스피드로 세탁기 작동법, 워터 히터 켜는 법만 알려주고는 모르는 건 메세지로 언제든 물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저씨가 남긴 유일한 어드바이스는 ‘아줌마네’에 가서 꼭 밥을 먹어보라는 것이었다. 가게 이름이 없어서 그냥 동네 사람들은 ‘아줌마네’라고 부른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골목 코너를 돌면 바로 보인다고 했다.


아저씨가 가고 집안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주방 식탁에는 웰컴 선물 꾸러미가 올려져 있다. 홈메이드 치즈파이, 오렌지, 멜론, 초콜렛 파운드 케익에, 무려 크레트 화이트 와인까지 있었다.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스해졌다.


푹신한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은 집 앞에 있는 해변에 갔다가, 아줌마네에서 밥을 먹어야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해변으로 향했다. 걸어서 딱 3분 거리였다. 이렇게 해변에 가까운 곳에 머문 적이 없었던 터라 너무 신이 났다. 집 앞바다는 청량하게 푸르렀다. 9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아마도 햇볕이 강해지기 전에 수영을 하려는 로컬 사람들인 것 같았다.


먼저 우리는 아침을 먹기로 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카페 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크레타 전통 브렉퍼스트는 치즈 파이, 견과류에 말린 과일, 두 가지 치즈, 무화과 브레드가 나왔다. 그래, 이거지. 올리브 오일과 오레가노, 꿀만이 첨가된 담백하고, 신선하고, 본연의 맛으로 승부를 보는 그리스 음식. 그리스식 아침 식사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직접 짠 오렌지 주스인데, 차원이 다른 상큼하고 청량한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맛있다.


밥을 먹고 나서 해변을 따라 걸었다. 바다를 보며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많다. 이런 뷰를 보며 사색을 하는 일상의 철학자들이 그려졌다. 심지어 아이들의 놀이터의 그네도 이런 뷰를 보며 놀 수 있다니.


12시가 넘어가면서 해가 뜨거워져서 낮 동안은 집에서 쉬기로 했다. 오후 5시가 되어 정수리에 내리꽂는 것 같은 뜨거운 햇살이 잦아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하나 둘 다시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올드타운이 있는 베네치안 포트로 걸어갔다. 노을을 보면서 저녁을 먹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는 마음이 절로 편해진다. 그리스 섬은 사람을 긴장을 풀고 느슨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위압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사람들 역시 유하고 부드럽고, 포용하는 자세가 있다. 예측 불가능한 거친 바다와 삶을 함께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역사적으로 베니스, 터키, 영국, 이탈리아 등 강대국에게 피지배자인채로 오랜 기간 살아온 경험 때문일까. 삶은 내 의지로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자세가 느껴진다.


밤거리를 산책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이후로, 그리스 섬에 오면 무의식적으로 조르바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크레타 사람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자전적 소설을 썼다. 주인공은 조르바라는 일꾼을 만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서, 자유인 그 자체로 살아가는 조르바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본다. 인텔리이자 책벌레인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조르바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이고, “이 세상 구석구석, 인간의 영혼 구석구석을 누빈 사람”이라고 감탄한다.


어느 날 조르바는 이렇게 묻는다.

봅시다, 어느 날 나는 조그만 마을로 갔습니다. 갔더니 아흔을 넘긴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삐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아니,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그랬더니 허리가 꼬구라진 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다.> 내가 대꾸했죠. <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이 섬의 누군가도 지금 이런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있을까.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인생의 큰 질문을 해야 하는 때가 있다면, 여기만큼 그런 사색을 하기에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 발길 닿는 어디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벤치가 널려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와 보낼 몇 달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요모조모 따져 봐도 나는 아무래도 행복을 헐값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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