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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Oct 26. 2022

그리스 레스토랑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지중해를 여행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장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즐기는 방식 일 것이다.


이들에게 레스토랑 디너는 최소한 2-3시간씩 이어지는, 길고 느린 연회에 가깝다. 그래서 얼른 밥을 먹고 집에 가고 싶은 피곤한 저녁에는 레스토랑을 가지 않는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밥을 먹고 나서 계산서를 받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에 지쳐, 이건 마치 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크레타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올드 타운을 지나가다가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가게의 매니저는 예약 리스트를 확인하더니 운이 좋게도 한 테이블이 비었다며,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평일 저녁에도 예약이 거의 다 차있다니, 인기가 많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메뉴를 설명받고, 즐거운 식사를 했다. 우리가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식당 입구를 보니 웨이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마지막 와인을 입에 털어놓고, 웨이터에게 계산서를 달라고 부탁했다. 분주하게 테이블을 오가며 서빙을 하던 그는 의아한 눈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왜 벌써 가려는 거야?”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밥을 다 먹었고,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 같으니 자리를 비워주려는 거라고 했다. 그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아직 가기에는 너무 이르잖아, 라고 서운한 얼굴을 한다. 서두를 것 없으니 천천히 쉬었다 가라는 말과 함께 가게 서비스라며 과일 한 접시와 우조(그리스 전통술)를 내왔다.


그렇다. 그는 우리가 더 머물러 무언가를 더 주문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식사를 마친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주는 과일과 식후주를 먹고 가기를 원해서 서운한 얼굴을 한 것이다.


그러자 우리 주변 테이블도 밥을 다 먹고 과일과 우조를 앞에 두고, 편히 앉아서 웃고 떠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물 잔은 계속해서 채워지고, 담배꽁초가 쌓이면 재떨이도 갈아주며 웨이터는 여전히 그들을 살갑게 챙긴다.


직원들은 그들에게 언제 자리를 비워줄 건지 눈치를 주지 않고, 손님들도 밥을 다 먹고도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한 권리라는 듯 편하게 즐기고 있다.



이곳을 여행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이런 풍경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이 참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속도로 음식을 음미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일에만 온전히 몰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레스토랑의 문화가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이.


홍콩이나 서울처럼 임대료가 비싼 곳에서 높은 테이블 회전율을 원하는 가게 주인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곳이 우리와 다른 것은 임대료가 더 저렴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즐거움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건 아닐까. 그래서 레스토랑은 음식 서비스로 돈을 버는 장사이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쾌락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의 눈에는 바쁘게 해치우듯이 먹고 일어서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 싶다. 왜 저렇게 서두르는 거야, 왜 즐기지 않고 속도에 파묻혀버리는 거야, 하고 묻는 것이다. 지금 먹고 있는 빵과 음식을, 지금 마시는 와인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면, 그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이렇게 단단하게 쌓아온 여유로운 삶의 자세가 이곳의 레스토랑을 비즈니스의 영역과 (말하자면) 신성한 영역 사이의 무엇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낼 음식값 이상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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