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서로의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직업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있다.
숙소의 거실에서 남편이 일을 하는 동안, 안방에서 헤드폰을 끼고 내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종종 그의 업무 대화를 듣게 된다. 평소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떤 맥락에서 그가 조금 힘들어 보이는지, 긴장을 한 것 같은지, 세밀한 변화가 느껴진다.
한 번은 동료가 힘들다며 넋두리를 하는데, 단지 ‘힘내라, 잘될 거야’라는 말뿐인 조언보다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느라 뜸 들이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그는 머릿속으로 최선의 말을 찾고 있을 것이다. 한 번은 그가 진행하는 미팅에서 분위기가 쳐지는 것 같자, 한껏 에너지를 끌어올린 목소리로 미팅의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순간도 있었다.
그냥 평소 같았다면 회사에서 퇴근을 한 그가 ‘오늘 진짜 힘들었어.’라고 했을 때 그래? 고생했네.라고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어떤 일의 맥락에서 힘이 빠졌고, 어떤 일이 마음이 쓰였는지, 지금처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일보다 힘든 마음을 세밀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일은 누군가가 세심하게 읽어주지 않아도, 그냥 좋은 것이다. 힘든 마음은 그 힘듦의 형체와 밀도를 알아준다는 것 자체로도 큰 위안이 된다. 그렇게 마음을 알아차려주는 것이 그 시기의 삶을 이해받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연결된 마음은 덜 외로워진다.
그래서 누군가의 힘든 일은 두루뭉술하게 대충 이해하지 않고, 세심하게 이해해주어야 한다. 그게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은 타인에 의해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언제나 믿어왔다.
우리가 그리 자주 서로를 구원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얼마쯤은 서로를 구원하고, 또 구원받는다는 것을 안다.
- 제임스 볼드윈
세상과 화해하지 못할 일을 또다시 마주했던 지난 며칠이었다.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시스템이 놓쳐버린 지점이 보도될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희생자들의 개인 스토리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슬픔과 한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슬퍼할 만큼 슬퍼하고, 화를 낼만큼 내고, 마음이 불편할 예정이다.
세상의 불합리를 이해한다는 건 삶의 정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 일은 쉽게 흘려보낼 수 없는 것들이 되어 한동안 마음을 어지럽히겠지만,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고, 세심하게 이 슬픔을 돌보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지금의 최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