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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Nov 10. 2022

영화에도 단짠단짠 조합이 있다면


지난 며칠 몸살 기운에 침대에서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이럴 때 영화를 많이 보게 된다. 책을 읽거나 일을 할 만큼의 집중력은 없고, 약기운에 취한 몽롱한 기분일때 시간을 보내기에 영화가 제격이니까. 지난 며칠을 돌이켜보니 내가 아플 때 주로 보는 영화들의 패턴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음식으로 치자면 단짠단짠의 조합처럼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다음에는 상반되는 자극을 찾아 다른 종류의 영화를 보고, 또다시 그 패턴이 반복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우선 좀 유치한 하이틴 영화로 시작을 한다. 넷플릭스를 둘러보니 최근에 나온 하이틴 무비로 [헬로, 굿바이,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이 보인다. 찾아보니 IMDb에서 평점이 10점 만점에 5점이다. 그래, 딱 이 정도가 좋다.


영화나 음악은 취향의 문제라서 좋고 나쁨을 절대적 점수로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어떤 점수대에 있다는 건,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등을 돌렸는지에 대한 하나의 지표가 될 수는 있다. 영화가 이야기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영화는 절반 정도의 관객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했거나, 혹은 배우들의 케미스트리가 별로였거나 등등의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들이 오늘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좋은 스토리로 설득당하지 않아도, 그저 필굿 영화, 보면서 적당히 기분이 좋은 영화라면 괜찮으니까.



이 영화는 고등학교 3학년에 만난 커플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대학에 가기 전까지만 계약 연애를 하자고 하면서 - 대학에 가서 서로가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말자는 그럴듯한 이유로 - 벌어지는 전형적인 상큼한 하이틴 영화였다. 평소라면 끝도 없는 가벼움에 못 견뎌서 못 봤을지도 모르지만, 몽롱한 기운의 나는 이걸 재밌게 봤다. 보고 나면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지만, 동시에 밥을 먹었는데도 헛배가 불러서 여전히 뭔가를 더 먹고 싶어지는 기분이 된다. 이럴 때는 현실성이 있고 좀 더 묵직하게 울림을 주는 영화가 고파진다.


그다음에는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있었던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를 골랐다.


한마디로 너무, 좋았다. 요즘처럼 중간에 끊고, 또 다른 걸 하다가 다시 이어 보기를 하기 쉬운 때에, 이 영화는 안 끊고 끝까지 본 몇 안 되는 영화였다. 영화는 고등학생인 여주인공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부모님 몰래 낙태를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는 며칠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조용히 관찰하듯 카메라가 그녀를 따라간다. 의견이 나눠질 수 있는 주제이지만, 이 영화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차분하게 그녀의 여정을 보여줄 뿐이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그녀의 삶에는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여자들의 이야기 - 연애,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 사랑과 학대의 애매한 경계선,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의 고민 - 이 농밀하게 담겨있다. 용감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이 모든 일을 감당해내는 그녀가 어떤 장면에서는 영락없는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때 울컥 눈물이 났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시절이 있었고, 그때 내 역량보다 더 큰 문제를 직면하면서 내 본질을 흔드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으니까. 그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물결처럼 부드럽고, 시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비슷한 주제로 아니 에르노 원작의 프랑스 영화<레벤느망>을 봤는데, 그 영화도 올여름에 본 너무 좋았던 영화 중에 하나였는데,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지만, 나는 이 영화가 조금 더 내 취향에 가까웠다.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화면을 채우는 인물의 표정과 간간이 이어지는 대화에서 다양한 변주의 감정과 뉘앙스를 읽을 수 있는 영화였다. 분명히 언젠가 다시 보고 싶어질 영화.

이렇게 단짠단짠의 영화를 돌려보며, 으슬으슬한 몸살도 조금씩 물러가고, 몸은 천천히 회복을 하고,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쓸모없이 버려지는 시간일까. 사람들에게 쉽게 외면받는 평점이 낮은 영화는 볼 가치가 없는 영화일까. 이런 소득 없는 낭낭한 질문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평점이 낮은 영화의 효용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누워있는 거 말고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 감기몸살 시즌에 5-6점 사이의 영화를 좀 봐주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보면서 머릿속으로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따지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냥 적당한 감흥을 즐기는 영화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조금 유치하고, 가벼워서 질려 갈 때쯤, 다음에 선택한 영화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장점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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