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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Dec 17. 2022

연말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97살의 어느 철학자의 고백  



97살이 된 노인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어렵게 바지를 입고, 벨트를 하고, 옷의 단추를 잠근다.


일상의 작은 일조차 타인의 도움이 필요해진 사람의 기분과 그 내면의 심리에 대해서,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기 연민도, 슬픔도 담겨있지 않은 담담함이 느껴진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그는 다양한 주제로 철학책을 썼는데, 그중의 하나가 ‘죽음’이었다. 그는 ‘왜 우리는 죽음을 늘 걱정하고,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가 철학적 접근으로 이른 결론은 ‘죽음 이후의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97살의 그는 다시금 그 질문을 던지고, 젊고 유능했던 철학자로서 자신 있게 발표했던 죽음에 대한 성찰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오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닌데, 머지않은 시간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두려운지, 왜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다고 느끼는 걸까.


내가 깨달은 것은, 그 질문 자체가 바보 같았다는 거예요. 죽는다는 것은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두려운 거예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저 본능적으로 살고 싶고, 이 세상에 존재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이죠.


그는 집 뒷마당에 앉아 정원의 나무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곳에 앉아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행복해져요. 내가 평생을 살아온 집 뒷마당의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왜 나는 평생 모르고 살았을까. 왜 충분히 이런 것들을 감사하며 살지 않았을까. 후회가 돼요.“


70여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와이프가 떠나고 혼자 남겨진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는 슬픔에 북받쳐 얼굴을 파묻고 흐느낀다. 평생을 함께 일하고, 함께 여행하며, 함께 행복했던 와이프가 없는 지금 그의 삶의 중심에는 공허함이 있다고. 그녀가 떠나면서 그의 일부분도 함께 떠났기 때문이라고 하는 부분이 굉장히 슬펐다.



이 영상은 다큐멘터리 감독인 손자가 그의 마지막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찍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였던 그는 자연스럽게 그의 일상을 담을 수 있었고, 영상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결심을 하면서 영상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흐느껴 우는 장면에서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 영상을 찍고 나서 몇 달 뒤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몇 년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발견하고나서, 종종 생각이 나서 다시 찾게 된다. 특히나 한해를 돌이켜보는 연말이 되면 한 번씩 다시 보게 되는 것 같다. 연말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기 때문일까. 새해를 위해 거창한 목표와 다짐을 하기 전에 내 뒷마당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알아가고, 즐기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https://youtu.be/qX6NztnPU-4

유튜브 영상 : 97살의 철학자가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는 법 (한국어 자막은 없지만 영어 자막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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