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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Jan 30. 2023

영화 <애프터썬> 그 해, 여름휴가의 재구성

부모가 한 인간으로서 조용히 내면에서 겪는 분투를
자식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갖고 있는 이 본연의 슬픔에 대해서 이보다 더 아름답고, 애틋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에 가족과 갔던 여름휴가를 되돌아보면 왠지 아련하다. 대부분이 좋았던 기억들이었는데도 -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누군가의 농담에 한참을 웃었던 순간,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서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던 시간도, 수영을 하고 다 같이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숙소로 돌아오던 장면도 - 되돌아보면 왠지 조금 슬프다. 좋았던 시절의 기억에 담긴 서글픔 한방울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영화 <애프터썬>은 주인공 소피가 어릴 때 아빠와 단 둘이 터키로 여름휴가를 갔던 기억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그해 여름의 소피는 11살이고, 아빠 캘럼은 여행지에서 서른한 번째 생일을 맞았다. 둘의 나이 차를 계산해보면 캘럼은 고작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되었다는 의미인데, 그 후에 소피의 엄마와는 이혼을 해서 따로 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휴가를 함께 보내면서, 그간 서로 만나지 못한 시간을 채워간다.


여행은 대부분 행복한 순간으로 채워진다. 소피는 비디오카메라로 여행의 순간을 담는다. 아빠와 수영을 하고, 아빠에게 궁금한 게 많은 소피는 스무고개 같은 질문 공세를 퍼붓기도 하고, 엄마 눈치 보지 않고 디저트를 맘껏 먹고, 가라오케를 하고, 뜬금없이 길에서 타이치를 하는 아빠를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들의 친밀함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물결처럼 찰랑찰랑 넘쳤다.



이 영화는 애정이 가득한 그 모든 순간에, 수면 아래에 조용히 흐르고 있는 관계의 긴장도 세밀하게 포착한다. 소피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도 좋지만, 함께 살지 않는 아빠와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슬픔과 불안을 느낀다. 아빠와의 이 친밀감이 사라질까 두렵다. 동시에 사춘기를 막 들어서는 시기의 아이가 겪는 혼란스러움도 있다. 수영장에서 만난 언니오빠 그룹을 보면서 와일드한 시기(연애, 가십, 음주를 동반한)에 본능적인 호기심을 느낀다.  


이 여름을 재구성해보고 있는 어른이 된 소피의 눈에는 어린 시절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빠가 읽었던 책들, 마셨던 술병의 수, 돈에 관련된 이야기에 민감했던 것, 그가 종종 사라졌던 밤, 아빠가 했던 말들, 혹은 뜸 들이며 하지 않았던 말들. 그런 것들로 아빠라는 사람의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소피에게는 찬란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그 여름휴가에 아빠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서른 살을 막 넘긴 캘럼의 삶은 실패를 거듭하며 잘 풀리지 않았고, 그래서 지독히도 괴롭고 우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그는 여행 내내 최선을 다해 그의 우울을 숨기려고 했고, 그것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는 것도.



그런 재구성을 통해서 소피는 둘이 함께했던 여름휴가에 다른 층위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의 아빠가 겪었을 시간, 그때의 마음, 그 고통까지도 이해하게 된다. 소피의 스무고개 같은 질문 중에서 “아빠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 아빠는 커서 뭐가 되고 싶었어?”라는 말에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던 아빠의 마음 같은 것도.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없어 보이는 어린 소피와 달리 이미 끝에 다다른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소피는 이제 그때의 아빠의 나이가 되어 아빠라는 사람을 새롭게 이해하고, (아빠가 더 이상 곁에 있지 않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만) 그때로 돌아가 아빠를 안아주고 싶다. 아빠가 떠난 후, “왜?”라는 질문이 늘 그녀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이제는 안다. 그가 겪은 우울은 봄날의 햇살처럼 순수하고 따스한 그녀의 사랑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 세상에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소피와 캘럼의 사랑도, 그 안의 슬픔도 은은하게 내 몸 안에 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부모란 자식보다 생의 주기에서 훨씬 앞서서 걷고 있어서, 그들이 한 인간으로서 조용히 내면에서 겪는 분투를 우리는 모를 수밖에 없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갖고 있는 이 본연의 슬픔에 대해서 이보다 더 아름답고, 애틋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18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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