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마트 체인인 H마트의 반찬 코너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한 여자가 있다. 미국과 한국의 혼혈인 미셸 자우너는 몇 년 전 엄마를 암으로 잃었다. 돌아가신 한국인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제는 제법 덤덤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지만, 이곳 H마트에서는 주체할 수 없이 울어버리고 만다.
이곳에는 엄마가 해주던 반찬들이 있고, 학교가 끝나고 엄마와 함께 먹었던 죠리퐁과 뻥튀기가 있고, 매주 주말이면 이곳 푸드코트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그녀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을 때 어떤 브랜드의 식재료를 사야 할지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H마트는 그녀가 엄마의 부재를 가장 깊고 아리게 느끼게 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엄마와의 좋았던 추억을 회상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평면적인 사랑이야기. 대신 그녀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엄마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와 딸이라는 본연적으로 복잡한 관계가 그녀의 경우에는 문화적인 차이로 더욱 골이 깊어진다. 문화적으로 미국인인 그녀와 뼛속까지 한국인인 엄마가 서로 너무 달라서 서로를 이해 못 하는 순간들이 있고, 한국 엄마 특유의 터프한 사랑에(예를 들면, 끊임없는 외모지적과 등짝 스매싱같은) 아파하는 날들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둘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건 바로 한국음식이다. 미국인인 그녀가 토종 한국인 입맛을 가진 건, 가족들의 한국 음식에 대한 열렬한 사랑 때문이다. 그녀의 밥상은 맥앤치즈와 치즈버거 대신 적당히 익은 맛있는 김치와 콤콤한 청국장, 바싹 구운 삼겹살,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로 덮여있었다. 그녀는 겨자와 식초를 넣어서 간을 맞춰 냉면을 먹는 법을 알고, 비가 오면 떡볶이가 먹고 싶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제철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대해 배우며 자랐다.
이 책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며 사람들에게 낯선 존재였던 혼혈로서의 혼란스러웠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뮤지션을 꿈꿔왔던 미셸이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바라는 엄마의 반대에 부딪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매년 여름이면 엄마를 따라 서울에서 지내면서 음식과 문화에 매료되었던 그녀의 문화 탐험기이기도 하고, 한국음식에 대한 사랑이 결국 엄마를 이해하고, 알아가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의 글은 솔직하고 신선하다. 흔히 엄마를 애틋하고 소중한 존재로만 그리는 이야기는 엄마와의 다이내믹한 관계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실제의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만큼이나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상처를 주는 모습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섬세한 문장으로 이 다이내믹한 관계를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미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고, 늘 자신이 아닌 것(여성스럽고, 외모를 가꾸고,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 같은)을 요구했던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다가, 문득 엄마라는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20대의 엄마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오면서 겪었을 외로움과 타향살이의 서글픔, 추후에 드러난 아빠의 외도 같은 순탄치 않은 삶을 돌아보며 아파하기도 한다.
암진단을 받은 엄마가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미셸은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돌보기로 한다. 간병이라는 감정적으로 버거운 시간에 대해서도 그 과정을 면밀하게 그려내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약해져 가는 엄마를 보는 슬픔과 하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아이러니.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아플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로는 서로에게 전부인 것을 아는,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 이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엄마가 떠난 지금, 그녀는 여전히 H마트를 찾는다. 푸드 코트에서 해물 짬뽕을 먹는 한 아줌마를 보며, 해물 짬뽕을 좋아하던 우리 엄마는 왜 더 이상 내 곁에 없나 화가 나기도 한다.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엄마와 아들을 보며, 엄마가 아들 숟가락에 반찬을 얻어주는데도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너는 그 한 점의 반찬에 얼마나 많은 엄마의 사랑이 담겨있는지 모르는 거냐고, 삶이라는 건 알 수가 없는 것이어서 니 앞에 앉아있는 엄마가 언젠가는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며, 두 손을 잡고 설교하고 싶어 진다. 어쩌면 그건 과거의 그녀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울었다고 했다. 엄마와의 관계가 애틋해지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한 평온이 찾아왔다. 그녀의 문장에 담긴 당찬 에너지가 나에게는 위로처럼 다가왔다. 지금의 나에게도 좋았지만, 그때의 몇 년 전의 내가 읽었다면 정말 위안이 되었을 텐데 싶다. 세상에는 그저 누군가도 이 모든 것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일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결국 그녀는 이 모든 경험을 겪어냈고, 그 모든 여정 끝에 어떤 편안함에 도달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엄마에 대해서, 그리고 간병이라는 시간과 상실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 진심 어린 글로 풀어낼 만큼은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우리들에게, 이 글은 슬프지만 해피앤딩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녀의 밴드 ‘재패니즈 브랙퍼스트 Japanese Breakfast’의 음악을 들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진전이 없던 음악 커리어에 지쳐있을 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앨범을 하나 냈는데, 그 앨범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래미 어워드까지 받게 되었다. 그 앨범은 엄마를 보내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엄마가 그렇게도 반대하던 뮤지션의 길이, 엄마를 잃고 나서 쓴 곡들로 열리게 된 이런 상황이 운명의 장난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최선을 다해, 아낌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그녀 특유의 당당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KmXnuD-Jp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