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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Mar 18. 2022

떠나지 않고도 여행할 수 있다면

<설탕의 맛> 김사과

여행의 기록, 좀 더 정확히는 일상 같은 여행을 기록한 책을 만났다.  


좋은 여행기는 쓰는 사람의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그래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독자는 무엇보다도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흡수하게 되는것이다. 이 여행기는 나른하다가, 시니컬하고, 종종은 폭발적인 에너지가 있고, 낯선 상황에도 용감하게 몸을 던지는 작가의 여정이 담겨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지만, 모두가 훌륭한 여행 작가이진 않은 이유는 경험에서 고유한 시각과 삶의 태도를 녹여내는 일을 해내는가의 차이이다.


그래서 여행작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나는 다이나믹한 여행을 하는 활발한 여행자가 아닌,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억이 생생함을 잃기 전에 꼼꼼하게 기록하는 사람이 그려진다. 그 일을 한 두 번에 그치지 않고 매일매일 반복한 덕분에, 독자로서의 나는 그들의 경험을 아주 즐겁게 공유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그들의 인내심과 기록에 대한 열정이 고마워진다. 다른 누군가의 경험을 깊이 공감한다는 건, 직접적 경험 이상으로 즐거울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런 책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도 여행하게 한다.



이 책은 소설가 김사과의 여행기 <설탕의 맛>이다. 몇 달씩 해외에서 머물면서 소설을 썼던 그녀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녀가 머문 도시들은 뉴욕, 베를린, 포르투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여행기는 조금 다르다. 건조하고, 거칠다. 그녀가 그곳에 머물렀던 이유는 그 도시를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때의 그녀가 가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해 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 안의 사람들이다. 정말로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 있다.
딱히 싫은 것은 아니다. 단지 전형적인 현대의 대도시적인 특성이, 서울을 떠올리게 하는 무엇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 p43


그녀에게 집을 빌려준 집주인의 아들 헨리를 만나 친구가 된다. 그의 부르주아적 삶, 여유로움을 상속받은 이의 삶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알아간다. 그건 느릿한 매력이 있는 레게 음악 같기도 하지만, 짜릿한 맛이 없는 밋밋한 두부 샐러드 같기도 한 것이다.


히피 출신 부모를 둔, 뉴욕에서 태어난 X세대 미국인. 그는 타고난 예민함에 더해 한량의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영향으로 까다롭고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p49
그는 현대인이라면 가지고 있을 모든 중류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아마 그는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뉴욕의 삶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값비싸고 세련된 막다른 골목이며, 레게와 두부샐러드 따위로 거기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p59
이곳에서 유기농 식재료는 유행이나 상류층의 생활양식을 나타내는 표식이라기보다는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다. 당연히 이것이 어떤 다른 삶,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첫걸음 따위는 될 수 없다. 그저 또 하나의, 다듬어지고 세련된 생활양식일 뿐이다. p75


이번이 인생 첫 해외여행이라는 그녀는 낯선 사회에서 예민하게 다름과 닮음을 읽어낸다. 어쩌면 경계인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라디오를 틀자, 폭탄테러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미국의 뉴스 채널은 언제나 그런 소식으로 가득하다. 그것들은 헐리우드 재난 영화처럼 초현실적이고, 장르적 재미를 준다. p64
이곳에서, 공포는 외부에 있다.
그것이 뉴욕과 서울의 다른 점이다. 서울에서, 공포는 내부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멀리 떨어진 이 두 도시의 공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 국제화다. p66


있던 자리를 떠나서야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풍경이 바뀐 일상에서 그녀는 한국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짚어본다.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한국보다 흥미로운 장소를 알지 못한다. 내가 올해 봄과 여름 목격한 서양 도시들은 죽어있었다. 아니, 죽어가고 있었다. p73
그러나 그것들은 한국이 가진 문제들에 비하면 시시해 보인다. 9.11 이후 뉴욕이 가진 공포는, 지난 100년간 한국이 키워온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진다. p73
한국이 지옥이 이유는 당연하다. 무책임한 살육과 독재, 무계획적인 파괴와 증축은 영혼을 파괴한다. p81
과연 한국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영혼을 갖게 될 수 있을까? 풍요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의 돈으로 교양을 쌓고, 3개 국어에 능통해진 채, 전 세계를 돌며 커리어를 쌓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영혼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식으로는 어떤 가치도 태어나지 않는다. p81


뉴욕의 거리 (책에 등장하는 사진은 아닙니다) ©소도


시간이 지나 어느새 그녀는 도시에 적응하고, 자기만의 뉴욕스러움을 정의 내린다.

지금도 데이드림 네이션을 들으면, 까칠까칠한 뉴욕 다운타운의 거리와 찌는 햇살과 매연을 느낄 수 있다. 소닉 유스는 진정한 뉴욕의 동네 밴드다. p73


이번엔 두 달을 머물기 위해서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로 떠난다.  


하지만 뭘 하든 이 정체불명의 모호함을, 이 모호한 짜증과 불안을 걷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늘 그렇듯이, 나는 도망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p106


그곳에서의 삶은 예술가 친구 무리를 만나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클럽에 가고, 어울려 다니며, ‘되는 게 없는’ 유럽 도시의 삶이다.


돈을 꺼내려고 ATM 기계로 갔다. 그것은 내가 가져온 세 종류의 국제 현금카드를 모두 뱉어내었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여기는 유럽이다. 아무것도 안되는 유럽에 나는 이미 꽤 익숙하다. p100
해가 떠오를 무렵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알코올과 카페인에 절은 뇌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집 앞 성당의 종은 규칙적으로 꽝꽝 울려댔고,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나는 뭔가를 생각하다 인간은 미쳤다는 결론에 이르고 기뻐하며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p127
포르투갈은 블랙홀이야, 떠나기가 쉽지 않아. 정착하기가 너무 쉽거든. 어느 날 어느 파티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비슷한 얘기를 다른 도시에서도 들었다. 베를린에서도, 프라하에서도, 그리고 뉴욕에서도. 그리고 그건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끝도 없이 마주쳤다. p138
어느 상황에서건 우아한 태도를 잃지 않는 유럽의 노인들. 그것은 서구 개인주의의 승리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약간의, 아주 지독한 애처로움이 있었는데, 그건 나에게 미셸 우엘백의 몇몇 소설들을 떠오르게 했다. 유럽, 늙은 땅, 긍지를 잃지 않는, 우아하게 늙어가는 고독한 노인들의 대륙, 그 안에서 나는 우엘백이 느낀 구역질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p119
©소도


여행자도, 일상 생활자도 아닌 그녀의 애매한 삶이 때로는 혼란스럽다.


곧 나는 내 세 번째 소설의 초고를 끝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당장 어디에 있든 상관없는 삶을 갖게 되었다는,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가 어디든. 머물 이유도, 떠날 이유도 없다. 가야 할 이유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노트북을 올려놓을 책상이 있다면, 그게 어디든 상관없다. 떠나지도 머물지도 않는 삶이라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p137


그리고 또다시 떠날 시간이 오고, 그녀는 다시 짐을 싼다.


멀어져가는 도시를 바라보며 어쩐지 마음이 쓸쓸해졌다. 대체 이곳에서 뭘 한 건가. 그동안 보고 겪고 들은 것은 무엇인가. 어쩐지 모든 게 꿈같이 느껴졌다. p146
리스본에 도착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포르투갈에서 만난 친구들이 한국 가지 말고 여기서 살래. 그래? 그럼 거기서 살아. 어머니가 대답했다. p149


책의 서문에서 그녀는 요즘 시대의 여행이 그렇듯, 그녀의 여행 역시 그저 소비적 경험으로서의 여행이었다고 짐짓 시니컬하게 돌아본다.


지난 시대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강해졌다. 혹은 풍요로워지거나,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여행이란 소비와 다르지 않다. 베를린의 유니클로와 뉴욕의 유니클로와 리스본의 유니클로의 차이 속을 산책하는. p16
그 안에서 나는 글을 썼고, 사람들을 사귀었으며, 내 20대의 절반을 흘려보냈다. 나는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고 헌책방을 뒤지고 예술애호가들을 사귀었다. p17
하지만 설렘보다는 불안이 더 컸던 그 시기 내가 느낀 것을 덜 익은 과일처럼 시고 떫은 맛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서문에 썼듯, 내 여행을 채운 것은 대체로 지나치게 단 설탕의 맛이었고, 그건 매일 밤 잠들기 전 눈을 감은 채 여행에 대한 망상에 푹 잠겨 있던 내가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p28
©소도


날카로운 시선 너머에는 예기치 못한 위트가 있고, 시니컬함 이면에는 어떤 것이든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된 긍정적인 태도도 담겨있다. 삶의 많은 영역에서 적당한 건조함을 유지하면서도, 쓰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인 그녀를 만나고 나니, 이 여행에서 완성했다는 그녀의 소설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쓴 후 그녀는 또 어디로 떠나 길을 잃었는지도.


상관없다. 떠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다. 하여 떠난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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