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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Apr 11. 2023

[홍콩 일상] 먹고 또 걷는 주말 하이킹


여름이 오기 전에, 더 더워지기 전에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이번주에는 새로운 하이킹 루트를 선택했다. 란타오 섬의 작은 동네인 푸이오에서 씨 랜치 Sea Ranch까지 해안선을 따라 걷는 하이킹 루트이다. 왕복 3시간 정도로 길지만 경사가 완만한 편이라 크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하이킹의 시작은 우선, 푸이오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벨라챠오. 사실 여기서 아침을 먹기 위해 이 하이킹을 계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벨라챠오는 이탈리아 출신인 넉살 좋은 주인아저씨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 로마식 피자와 파스타로 유명하다. 원래는 점심과 저녁에만 운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아침메뉴인 코르네또와 카푸치노를 시작했다.


10시쯤 도착해서, 주인아저씨 마테오와 인사를 하고, 혹시 코르네또가 남았는지 물었다. 다행히 서너 개 남아있다고 해서 기쁜 마음에 자리에 앉았다. 마테오는 카푸치노를 기가 막히게 만드는 직원이 있는 날 왔다며 우리에게 운이 좋다고 말했다. 어딜 가도 이탈리아에서 만큼 맛있는 카푸치노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때 직원이 고운 거품이 소복이 내려진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한 모금 마셨는데, 내 예상을 뒤엎고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우유 거품과 커피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기분 좋게 넘어가는 카푸치노였다. 정말 이탈리아에서 먹던 맛이다.



만족스럽게 아침을 즐기는 우리 앞에 야생 소들이 유유히 도로를 지나갔다. 란타오 섬에는 야생 소, 야생 돼지, 그리고 대형 거북이가 자주 발견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놀랄 수 있지만, 이들을 마주치면 그냥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비켜서 지나가면 문제없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온순하고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서 도발하지 않는 이상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들의 유유자적한 걸음걸이를 보고 있자면 그들 역시 떳떳한 이 땅의 일원이라는, 인간만큼이나 중요한 지구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이 하이킹의 다른 이름은 ‘버려진 건물 탐험’이기도 한데, 하이킹 트레일 중간에 폐허가 된 건물과 리조트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걷기 시작해서 45분쯤 지났을 때, 엄청나게 아름다운 바다 풍경 앞에 서있는 건물을 만났다. 이 작은 이층 건물은 예전에는 2층에는 게스트 숙소를 운영하고, 1층에는 식당과 바를 운영했다고 한다. 10년도 전에 문을 닫은 이후로 오랫동안 건물은 버려진 채 방치되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버려지고 있다는 생각에 늘 씁쓸했는데, 이번에 보니 레노베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야외 테이블과 조경작업 정도만 진행이 되었는데도, 너무나 예쁘게 변신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기뻤다.



해변을 끼고 40분쯤 더 걸어서 마지막 종착지인 씨 랜치에 도착했다. 씨 랜치는 1970년대 럭셔리 하우징 프로젝트로 야심 차게 지어진 리조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막상 오픈하고 나서 생각보다 세일즈가 저조해서 대부분의 집들이 비어있는 상태로 방치된, 불운의 부동산 프로젝트이다. 이곳의 배경만 듣고는 스산한 고스트 타운 같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꽤나 따뜻한 느낌의 아파트 단지였다. 예쁜 코랄빛 바다가 다한 그런 동네였고, 지금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90년대에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이후에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한적하고 외딴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 재조명을 받고,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 오려면 홍콩 메인섬에서 바로 닿을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우리처럼 하이킹을 하거나, 아니면 옆에 있는 펑차오 섬에서 통통배를 타고 와야 한다. 우리가 선착장에 갔을 때 마침 통통배 한대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이곳 주민들이 옆 섬에서 장을 보고 오는지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내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인터넷도 들어오지 않고, 가게도 하나 없는 이곳에서 자발적으로 외딴 생활을 선택한 사람들이 신기했다.



잠시 바다 구경을 하고 쉬었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서 푸이오로 돌아왔다. 하이킹의 마무리로 피자와 맥주만 한 게 없지. 다시 벨라챠오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피자와 맥주/와인 한잔씩을 주문했다. 결국 하이킹의 시작도 끝도 먹는 일로 마무리되는 게 우습지만, 하이킹으로 노곤노곤해지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워서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그런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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