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도 May 19. 2023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 포틀랜드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포틀랜드를 꼽을 것이다. 마운트 후드를 비롯해서 자연이 아름답고, 아웃도어 액티비티하기에도 좋고, 운전을 하지 않는 나에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라는 거부할 수 없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도시가 좋은 건 포틀랜드만이 갖고 있는 자유분방한 분위기 때문이다.


<포틀랜디아 Portlandia>는 포틀랜드를 배경으로 포틀랜드 사람들이 얼마나 독특하고 ‘이상한지'를 스케치 코미디로 풀어낸 미국 TV 시리즈인데, 시즌 8까지 나왔을 만큼 인기가 있다. 예를 들면, 환경 문제에 대해 극성인 포틀랜드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는 재활용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덤스터 다이빙(dumpster diving) - 돌아다니면서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내는 운동을 보여주고,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동물권을 지지하며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포틀랜드의 한 식당은 그곳에서 사용하는 닭이 생전에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를 고객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한다.



지난여름 로드트립을 하는 길에 포틀랜드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짧은 체류였지만, 나는 파웰서점만 가면 되니까 라면서 내내 행복했다. 포틀랜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인 파웰 북스 Powell Books가 있다. 2,000평이 넘는 거대한 서점 안에서 길을 잃고 책을 구경하다 구석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책을 읽는 일이 나에게는 포틀랜드의 하이라이트이다.


머리 색부터 입은 옷까지 누구 하나 평범해 보이지 않은 손님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는 다른 손님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직원들에게 찾는 책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 누군가는 퍼시픽 웨스트의 생태계에 대한 책, 비건 베트남 음식 쿠킹북을 찾고 있었고, 누군가는 절판된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베스트셀러나 자기 계발서를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10여 년 전의 포틀랜드는 집값이 비싼 뉴욕, 엘에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저렴한 도시를 찾아 이사한 가난한 예술가들이 대안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도시였는데 (포틀랜디아의 오프닝 음악은 “포틀랜드, 젊은 세대가 일하지 않기 위해서 와서 사는 곳"이다), 지금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명성을 얻으면서, 중상층의 가족들이 자연친화적인 삶을 찾아서 이주해 온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미국의 대도시들만큼이나 비싸지고, 작고 독특한 가게들이 많았던 예전의 ‘포틀랜드스러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저 내가 잘 모르는 도시를 찾고 있었다. 잘 모르는 도시, 그래서 내 삶을 새롭게 발견할 수 밖에 없는 도시를. 그렇게 황당하게 태평양을 건너와 이 년을 살았다. 당연히 나는 아직도 이 도시를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퐅랜이 좋다. 이곳의 삶도 다른 도시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나는 날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있다. 결코 사사롭다고 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만한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특별히 이 도시, 퐅랜이라서 더욱 좋거나 소중한지는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보니 이 도시에 나는 서 있다. 아내와 딸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다행히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든다. 퐅랜, 나는 이 도시가 좋은데 어떤 게, 어떻게 좋은지 이제부터 쓰고 그릴 생각이다.

물론, 지극히 나만의 퐅랜 이야기다.

- 만화가 이우일 작가가 쓴 에세이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중에서.

(포틀랜드에 대한 여러 책들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다)



포틀랜드의 말들


속도를 줄이세요.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니까요.

 
너희들은 모두 완벽해
 
Black Lives Matter


종이비행기 접기 강습합니다

No war on our bodies


예술가가 집을 칠해드립니다

독서는 섹시해



포틀랜드 같은 도시가 또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에너지. 다른 누구의 기준에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답게 살라고 말하는 곳. 이상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곳에서는 남들과 다른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된다.


포틀랜드가 언제나 이렇게 이상하고 독특한 도시로 남아주었으면. 점점 획일화되는 이 세상에서 이런 도시 하나쯤은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포틀랜드의 슬로건처럼 Keep Portland Weird.




매거진의 이전글 나폴리 카페에선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커피를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