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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May 10. 2023

나폴리 카페에선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커피를 산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폴리에 관한 책을 읽던 중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Caffè sospeso 카페 소스페소 즉, 남겨둔 커피라는 단어였다.  


나폴리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카페에서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커피 한잔을 더 계산한다. 마치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이 세상에 커피를 바치는 것처럼 말이다.

카페 소스페소는 이런 식으로 이용된다. 보통 이탈리아 카페는 선불로 계산을 하고, 계산 후 받은 영수증을 바리스타에게 건네주고 커피를 받는 방식이다.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서 카페 소스페소도 계산하겠다고 하면 두 개의 영수증을 받는다. 손님은 추가로 받은 영수증을 카운터 옆에 있는 '카페 소스페소'라고 쓰인 작은 박스에 넣는다. 그러면 나중에 커피값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누군가가 카페에 들어와서 그 박스를 확인하고, 거기에 있는 남겨진 영수증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카페 소스페소는 작은 나눔을 베푸는 나폴리 전통의 기부문화인 셈이다. 생활 속의 작은 것도 나눌 줄 아는 나폴리탄의 따뜻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나폴리 사람들에게 커피는 빵이나 물만큼이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문득 우리는 저마다 ‘살만한 인생’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배우 이솜이 출연한 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이 돈이 없어서 집과 소유물을 하나씩 정리해 가면서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힘든 하루 끝에 마시는 위스키 한잔과 담배 한 개비였던 것이 떠올랐다.


여행을 하다 보면 주변의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졌는가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풍요롭지는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않은 나폴리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눌 줄 안다는 것은 내가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오늘 하루 유독 지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뿐이라는 것. 1유로의 커피를 나누면서 그들은 힘든 하루를 보낸 누군가에게 나는 당신이 보인다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폴리 여행에서 한 가장 나폴리스러운 일은 카페 소스페소 문화에 앞장서는 곳 중에 하나인 카페 감브리누스 Gran Caffè Gambrinus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눈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된 기부 운동인 '피자 소스페소'(피자 집에서 누군가를 위한 피자 한 조각 값으로 2-3유로를 덧붙여 계산하는 것)에도 참여했다. 적은 돈으로 나는 커피 한 잔, 피자 한 조각을 나누는 나폴리 공동체의 따스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1860년에 문을 연 유서깊은 역사적인 카페, 카페 감브리누스
나폴리의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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