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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May 01. 2023

나폴리에서 사랑에 빠졌다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영화 <Eat Pray Love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나폴리의 피자집에서 마가리따 피자를 앞에 두고 친구에게 고백한다.


나폴리 피자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그녀는 먹음직스러운 피자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크게 한입 베어 물며 말한다.


하지만 앞에 앉은 친구는 울상이다. 바로 이 피자 때문에 몸무게가 늘었고, 입던 청바지가 잠기지 않는다며. 줄리아 로버츠는 까짓것 내일 같이 새로운 청바지를 사러 가면 되지 않냐고, 지금 이 사랑스러운 피자를 즐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열변을 토한다.


나폴리 피자는 정말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할 만큼 감동적일까?



내가 먹어본 나폴리 피자는 정말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심플해 보이는데, 나폴리 피자는 이제껏 맛보지 못한 맛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가볍고 부드럽고, 깊이가 있지만 자극적이지는 않고, 피자인데도 마치 샐러드를 먹는 것 같은 상큼하고 신선한 맛이 있다. 감동적인 맛이었다.


나폴리 피자는 심플함이 원칙이다. 생 바질, 모짜렐라, 올리브 오일, 토마토 정도가 토핑의 전부이지만, 심플하면서도 좋은 재료, 그리고 장인들이 구워내는 화덕의 맛이 나폴리 피자를 특별하게 만든다. 나폴리 사람들은 화덕의 맛이 나폴리 피자의 맛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가볍고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촉촉한 도우를 만들려면 섭씨 427도에 맞춰진 화덕에 딱 정확하게 90초 안에 구워낸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재료인데, 신선함을 위해 로컬에서 공수하는 것이 원칙이고, 토마토의 경우 산 마르자노 San Marzano 토마토를 쓴다. 산미와 단맛의 조화, 그리고 수분함량이 낮아서 피자 소스로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인지 마가리따나 마리나라를 먹을 때 상큼하고 달콤한 맛의 베이스를 느낄 수 있었다.


나폴리에서는 유명한 피자집뿐만 아니라, 그냥 지나가다 본 작은 동네 피자집에 가더라도, 심지어는 길거리에 파는 3유로짜리 튀긴 피자 (피자 도우를 튀겨서 그 위에 토핑을 올린 것)를 먹더라도, 실패할 일이 없었다.



유명 맛집 vs 동네 피자집 vs 길거리 피자


이중에서도 나의 원픽은 지나가다가 충동적으로 들어간 동네의 작은 피자집이다. 저녁 시간에 동네를 걷다가 왠지 느낌이 좋아 보여서 한번 모험을 해볼까 하며 들어갔던 곳이었다. 영어 메뉴는 없었고,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이탈리아어로 메뉴를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마가리따 피자와 오메가 3 피자라는 신기한 메뉴를 골라봤다. 올리브오일 베이스에 모짜렐라 치즈와 세 가지 견과류 (호두, 아몬드, 피스타치오)가 올라간 피자라서 오메가 3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샐러드가 먼저 나오고 차례로 피자가 나왔다. 모든 메뉴가 기대이상으로 너무 맛있어서, 감탄하며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주방에 있던 직원들이 한 명씩 나와서 우리의 반응을 살핀다. 괜찮냐고 맛있는지 물어서, 우리는 입을 모아 “벨리씨모!”라며 엄지를 번쩍 들어 보였다. 우리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만족스러운 듯 씨익-웃는데, 옆에 있는 손님들 역시 다들 ‘당연하지'하는 끄덕임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접시에 남은 올리브 오일까지 도우로 싹싹 닦아내듯 먹었더니, 직원들이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계산서를 부탁하자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서비스라며 디저트를 주셨다. 갓 구운 도우에 슈가 파우더와 뉴텔라가 뿌려져 있었다. 이미 배가 불러서 이걸 어떻게 다 먹지 싶었는데, 하나씩 먹다 보니 어느새 다 비워버리고 말았다. 튀겨낸 도넛인데도 하나도 기름지지 않고 쫀득쫀득한 식감이 너무 맛있었다.



나폴리에서 먹었던 음식은 이런 경험의 반복이었다.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음식들을 어느 순간 싹 다 비우게 되는 나폴리의 마법. 신선한 재료를 써서 만든 음식들이라 다 먹고도 속이 불편하지 않아 만족스러움만 남는다.  


나폴리로 떠날 사람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유명한 맛집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지 말고, 그냥 자신의 감을 믿고 로컬 식당에 들어가는 모험을 해보라고. 그래서 그들이 추천하는 음식을 시도해 보라고. 인생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맛의 교감을 하는 경험을 해보라고 말이다.


나폴리에는 자부심을 갖고 진지하게 음식을 만들어내는 셰프가 있고, 그들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는 열광적인 손님들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과정, 그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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