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마망이 살아 있던 동안 내내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 동안 내내) 나는 그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게 나의 노이로제였다.
그런데 지금 (애도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바로 이 사실인데) 나의 애도는 말하자면 노이로제가 아닌 단 하나 나의 부분이다. 이건 어쩌면 마망이 떠나가면서, 마지막 선물처럼, 나의 가장 나쁜 부분, 나의 노이로제를 함께 가져가버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중에서
영화는 감독 키어스틴이 본인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그녀의 아빠 딕 존슨은 은퇴한 정신과 의사이고, 86세 생일을 앞두고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다. 키어스틴은 언제 올지 모르는 아빠의 마지막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녀가 선택한 극복 방법은 아빠와의 남은 시간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영화라는 판타지 안에서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아빠의 ‘죽음과 환생’을 그려내는 것. 그것도 아주 코믹하고, 종종 예상을 뒤엎고, 초현실적인 장면이 가득한 영화로 말이다. 먹먹하게 눈물 날 것 같은 소재가 유쾌함을 잃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딕 존슨은 길을 걷다가 건물에서 떨어진 컴퓨터에 머리를 맞아 쓰러지기도 하고, 공사 현장을 지나다가 목판에 목이 찔려 피를 뿜고 죽기도 하고, 이사를 준비하다가 집안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즉사하기도 한다. 드라마틱하게 연출된 장면보다 더 재밌는 것은, 이 장면을 만들어내는 비하인드 씬이다. 어떻게 죽는 것이 더 코믹할지, 더 리얼할지, 아빠와 촬영 스텝, 아빠를 연기하는 스턴트맨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기획하는 장면을 함께 보여준다.
어떻게 보자면, 이 영화는 딸 키어스틴의 좀 특이한 예행연습인 셈이다. 아빠의 치매 진단을 받고 수많은 끔찍한 what if 가 머릿속을 채웠을 것이다. 그녀의 두려움이 큰만큼, 오히려 더 과장되고 또 코믹하게 아빠의 죽음을 드라마화한다. 아빠가 죽는 상상을 하면서, 그걸 영화로 만들면서,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아빠를 조금씩 받아들인다. 마치 한번 놀라고나면, 다음엔 덜 놀랄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건, 주인공인 딕 존슨 씨의 매력 때문이다. 시애틀의 전망 좋은 오피스에서 환자를 보는 정신과 의사였던 이 스마트한 할아버지는 딸을 위해 기꺼이 우스꽝스러운 자신을 연기하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영화 현장에서 사람들과 섞여 넉살 좋은 농담을 하며 놀라운 친화력으로 친구를 만든다. 그에겐 낯선 사람들, 익숙지 않은 환경이지만, 그건 곧 딸의 세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딸을 다른 방식으로 조금 더 알아간다.
동시에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딸과 아빠의 대화에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뭉클해지기도 한다. 치매 증상이 조금씩 더 심해지면서, 키어스틴은 아빠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의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한다. 이사 준비를 하던 딕 존슨은 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하지만 결국 울컥하고 만다. 30년간 살았던 집, 평생을 알아온 친구들이 있는 곳을 떠난다는 사실의 무게가,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자립의 시간에서, 이제 딸에게 기대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한순간에 선명해지면서 수많은 감정을 마주한 것 같았다. 곧 감정을 추스르며 그는 말한다. “여길 떠나는 건 힘들지만, 여길 떠나지 않으면 너랑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뜻이니까. 너를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보다 지금 나에게 더 중요한 게 어딨겠니”라며 활짝 웃는다.
평생을 사람들을 상담하고, 마음을 읽는 일을 했던 그이기에, 그는 알았을 것이다. 아빠와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아빠가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한 딸의 마음을. 영화를 통해서 그의 죽음을 연출하는 것이, 딸에겐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촬영에 적응하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아빠가 딸에게 해주는 마지막 플레이, 놀아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만 준다면 참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면 서로를 잃는 고통도 마주해야 한다.
영화 속 그녀의 나레이션처럼, 이 영화는 결국 남겨진 사람들,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는 주로 카메라 뒤의 목소리로 등장할 뿐이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그녀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그래서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아빠와 딸이 만들어내는 코미디를 보며 웃으면서도 묘하게 눈물이 난다.
우리 자신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아무리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려 해도 담담해지지 않는 그 무엇이다. 고통도 슬픔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에겐 상상력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유쾌하게 코미디화 시키면서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함께하는 지금이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그녀는 ‘지금’을 그리고 ‘웃음’을 선택했다. 죽음은 어찌할 수 없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무엇을 할지, 무슨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지는, 온전히 우리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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