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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15. 2021

계란밥과 소고기 볶음면의 기억

홍콩에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료가 “점심시킬 건데 같이 주문할래?” 하고 물었다. 어디서 시키냐고 묻자 볶음밥이나 누들 같은 음식들이 있는 분식집(광동어로는 차찬탱이라고 부른다)이라고 하며, “아, 영화 중경삼림에 나왔던 곳인데, 알려나 모르겠네.”라고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덧붙였다.


 영화  장소와 내가 있는 곳의 접점이 있다는 사실이, 순간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조용히 혼자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가게의 계란밥( 위에 홍콩식 오믈렛을 얹은 ) 소고기 볶음면은 그때 이후로 거의  주식이 되었는데,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가 문을 닫았다.  도시의 많은 가게가 그랬던 것처럼, 고급 주얼리샵과 대형 프랜차이즈가  자리를 잠식했다.



지금 돌아보면,  회사생활이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던 시절이었는데, 나와 같이 후달리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시끌벅적하게 계란밥과 소고기 볶음면을 먹었던 시간은 좋았었다.


매일매일이 피곤하고 혼란스러웠지만, 그때만은 제법 또렷하게 느껴졌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래도 지금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막연히 믿게 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혼자서 일하면서 삽질만 하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요즘, 그때의 계란밥과 소고기 볶음면이 종종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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